하나님의 새로운 인도하심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의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서 43장 19절
축복에 따르는 고난
나는 1965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예수를 떠난 지 29년 만인 1994년에 다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여 1995년 1월에 세례를 받았다. 감사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큰 시련이나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는 데 반해, 나는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믿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예수님을 다시 믿고 1995년에 외무부 아태국장이 되었고, 1997년에 외무부 장관 특별보좌관이 되었으며, 1998년에 대통령 의전비서관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되었고, 2001년에 주중대사가 되었으며, 2008년에는 통일부 장관이 되었다.
나는 고난을 겪지 않고 예수를 믿게 된 대신에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는 만큼 내 자신이 스스로 힘든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가능한 한 세상적인 즐거움은 멀리하고 시간만 나면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충성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무척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생활이었지만 나는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인내했다.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내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청와대 시절도 그랬지만 대사로 있을 때도 마음 놓고 잠을 자기가 쉽지 않았다. 토요일도 공휴일도 없었다. 일 년 내내 일 아니면 기도 그리고 남을 돕는 일이 전부였다.
일이 많을 때는 일 때문에, 일이 없을 때는 공부와 기도 때문에 빨리 자야 새벽 2시나 3시였다. 대사 시절이나 은퇴한 지금도 누군가에게 이메일 답장을 보내는 시간이 거의 이 시간대이다. 그래서 내 이메일을 받은 사람 중에 메일을 보낸 시간을 보고 놀란 사람들이 많다.
2009년 2월에 공직에서 은퇴한 후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여보, 지난 10여 년 동안 당신이 일하고 기도한다고 나하고 물에도 가지 않고, 산에도 가지 않았는데 이제 은퇴했으니 어디든지 같이 좀 가요.”
내가 대답했다.
“여보, 당신 말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곳에 갈 여유가 없어요. 나는 지금도 내 기도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또 보살펴야 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어요. 당신이 그동안 잘 참아준 것은 알지만 좀 더 참아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때는 나와 내 가정만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축복을 받은 만큼 하나님나라와 그 백성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축복을 받은 만큼 작은 십자가라도 져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사실 더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은퇴한 지 2년 가까이 되지만 아직 아무 데도 놀러가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지 않으면서 오직 공부하고 기도하다 새벽이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하나님의 대사를 위한 준비
하나님께서는 2000년부터 나를 급격히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1권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해 2월에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얼굴도 모르는 박정미 집사라는 분과 전화를 하다가 방언을 시작했다. 그리고 박 집사를 통하여 계속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살아 계심을 확실히 알게 하셨다. 그것은 나를 중국에 ‘하나님의 대사’로 보내시기 위한 준비였다.
중국에 대사로 부임한 후 수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탈북자, 국군 포로, 납북자, 사형수, 수감자 등 사건 및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고, 6자회담으로 인하여 대표단들이 빈번히 오고 갔다. 더불어 한중 양국 관계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2001년 10월 내가 부임할 때 315억 불에 불과했던 양국 무역 거래량은 2007년 말에 1450억 불로, 미국과 일본과의 무역 거래량을 합한 액수에 달했다. 그리고 168만 명에 불과하던 양국 인적 교류는 478만 명으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한중 간 항공편도 매주 300편에서 830편으로 증가되었다. 중국에 체류하는 한국인들도 10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나를 계속 준비시키셨다. 어느 날 내 두 손을 강제적으로 들어 올리심으로 일에 대한 분별력을 갖도록 하시고, 방언에 대한 통변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단계적으로 열어주셨다. 그리고 어느 날은 포도주를 토하게 해서 내 몸의 체질을 바꿔버리셨다. 내 몸은 서서히 성령님에 의하여 장악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버리고, 무엇이든지 성령님이 원하시는 대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종을 보내시다
2004년 8월 말 분당예수세계교회 이광섭 목사님이 급히 베이징에 왔다. 내가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목사님은 주말에 별안간 하나님께서 베이징에 가서 김 대사님을 만나라고 하셔서 교회 일을 다른 전도사에게 맡기고 급히 왔다고 했다. 너무 급히 오다보니 비행기 표가 없어 할 수 없이 목사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비즈니스 석을 타고 왔다고 했다.
나는 이 목사님과 조용한 중국 식당으로 갔다. 자리에 앉더니 목사님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때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목사님이 서울에서 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갖고 온 것이었다. 나도 놀랐지만 이 목사님도 놀랐다. 왜냐하면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오기만 했지, 내가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내가 그 문제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고 하면 무척 놀라워했다.
목사님의 중국 방문을 통해서 그동안 내가 기도했던 문제들의 방향이 잡혔다. 나는 그날 저녁에 무릎 꿇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느끼면서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내가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나에게 확증시켜주시기 위해 교회 일로 바쁜 목사님을 급히 중국으로 보내주신 것이다.
아!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사역을 위한 수로를 파다
2001년 3월에 박정미 집사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은 앞으로 할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그때는 온 나라와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식인들을 깨우고 복음을 전파할 겁니다.”
당시 나는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이었기 때문에 박 집사가 하는 말들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주중대사로 근무할 때였다. 박 집사가 또 전화를 해서 말했다.
“대사님이 언젠가 중국을 떠나고 나면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쁨으로 말할 것입니다. 그때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에 있었을 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셨노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후에 이광섭 목사님이 박 전도사의 말을 확증해주었다.
“이제 대사님은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놓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향한 흐름이 될 것이고, 앞으로 또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일종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인데, 대사님이 그 네트워크 안에서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대사님은 앞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고, 많은 나라 기독교 지도자들과도 함께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박 전도사와 이 목사님의 이야기는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공직에서 은퇴한 후, 지금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그들의 말과 일치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주중대사 그리고 통일부 장관이라는 세상적인 직책을 주신 것은 나중에 하나님을 위한 사역을 할 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명예가 없으면 알아주지 않을 것이므로, 나를 높이시는 도구로 삼으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가난하고 어려운 하나님의 백성들도 만나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만나 교제하고 일했다. 이제 이 수로에 물이 밀려들어 올 시간이 되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강처럼 흐르고 물밀 듯이 들어올 것이고, 놀라운 일들이 도처에서 흐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나는 2009년 2월 11일, 통일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2일 아침에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지난 36년간 제가 계획한 모든 일을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의 후반부는 제가 계획하지 않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나는 그동안 맺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일단 단절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모셨던 몇 분의 상사들을 모시고 감사를 표한 다음, 모든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물론 핸드폰도 꺼버렸다. 교회 집회나 행사 그리고 아주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내가 먼저 전화를 하거나, 만나자고 요청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이제 지난 64년 동안 나를 인도해오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언젠가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다시 활동을 하게 되더라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하리라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