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믿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담대한 해방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희생제사로서의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공의를 요구를 모두 만족시켰습니다. 믿는 자들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구주께서 운명하실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반으로 갈라진 일이 그 사실을 확증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을 믿는 자들의 양심에 적용하시어 죄책감을 제거하시니,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데서 벗어나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
“오늘날 현대 교회의 가장 심각하고 치명적인 결함은 무엇일까요? 강단 메시지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써의 죽으심의 절대적인 필연성과 그 충분하고 완전한 가치와 효력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되, 중보자 그리스도와 그 행하신 일을 그 중심에 두고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고 논증하고 설득하고 호소하고 권면하는 강화입니다. 사도 바울이 괜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그 중심에서 밀려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다른 중보’를 모색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도덕성이나 종교성의 계발이든, 아니면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인 처방이든 벌써 ‘종교다원주의’의 넓은 터가 예비된 셈입니다. ‘그런 기독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실상을 감추고 인간주의적인 구원’을 남발하고, 서영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인하고 필연코 다른 종교와의 차별을 부끄러워 합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의 ‘교회성장’은 정말 ‘영적 재난’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그 쓰디쓴 열매를 맛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비극에서 벗어나는 오직 유일한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과 중보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 은혜의 샘물을 퍼마시는 데 있습니다. 교회사 시대 중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시던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박해와 세속의 쓰나미도 넘어뜨릴 수 없는 ‘담대한 확신으로 하나님 앞에’ 항상 서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영광을 사모하는 이들의 충실하고 명쾌한 길잡이임에 틀림없습니다.” _ 역자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