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주께 굴복하라 - C.H. 스펄전 [출판사:규장]
네 주께 굴복하라 - 하나님의 사람은 교만한 자아를 버리고 십자가 앞에 엎드린
네 ‘자신’을 빨리 포기하라!
진정 하나님을 섬기는지 자아를 섬기는지 자신을 돌아보라!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고 속히 돌이키라.
“교만과 위선의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라!”
네 완고한 마음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버리고
지금 주께 굴복하라!
우리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기보다는
거울로 자기 자신을 봐야 한다.
창문으로 밖을 볼 때는 다른 사람이 보이지만, 거울로 자기 자신을 볼 때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해명해야 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하나님께 반드시 해명해야 하며 거울에 비친 그 사람, 즉 자기 자신을 악으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거울에 비친 그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있다면 그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을 찾기 위해 일평생 온 세상을 찾아 헤매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이 죄를 지을지라도
자기 자신은 결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죄인은 다른 모든 사람이 곧 죄로 인한 형벌을 받게 될지라도 자기 자신은 그런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죄인은 혹이라도 두려운 생각이 자신의 무지몽매를 일깨우기라도 하면 외투에서 눈송이를 털어버리듯 그것을 즉각 털어낸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당신을 선대하신 까닭이
회개로 이끌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라!
그러므로 아직 회개하지 않은 채 세상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자여! 진정으로 구원받고 싶다면 당신의 구세주께 항복하라!
이제 당신은 피할 수 없다. 도망칠 데가 없다. 그러니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신 예수께 그만 굴복하라! 당신의 하나님께 그만 굴복하라! 거룩에, 진정한 행복에, 영원한 생명에 이제 그만 굴복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우실 것이다.
- 본문 중에서
[한국어판 편집자의 글]
빈손 들고 주께 나아가
십자가를 붙들라!
영어에 ‘카인이즘’Cainism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직역하면 ‘가인주의’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나서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든 태도에서 유래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죄를 짓고도 하나님께 대드는 태도를 ‘카인이즘’이라고 일컫는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은 범죄에 대해 하나님께 시인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죄를 정당화하면서 하나님께 대든다. 사도 바울은 타락한 인간의 심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 1:21,28,32
이렇게 인간은 생래적生來的으로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께 굴복하기를 싫어한다. 선지자 이사야도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 1:2-4
현대 기독교는 이런 패역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첨하여 그들을 교회로 유인하려고 한다. 회개의 촉구는 전혀 없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복음의 전령傳令인 스펄전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먼저 경고를 발한다.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4:17,7:19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엄 부스는 1912년 죽음 직전에 현대 기독교가 이런 형편에 떨어질 것을 예견했다.
“다음 세대 기독교의 가장 큰 위기는 지옥 없는 천국, 성령 없는 교회, 거듭남 없는 구원, 회개 없는 죄 용서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에서 회개를 외치는 원색적인 복음을 잘 들을 수 없다.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행 2:37) 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교회에 모이면 콘서트와 같은 여흥의 물결이 넘쳐나지만 심령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
복음의 샘이 말라버린 우리의 현실에서 옛 우물인 스펄전의 말씀의 샘을 다시 파서 복음의 생수를 맛보고자 한다. 스펄전의 죄인을 향한 경고의 음성은 맹렬하여 무서울 정도이다.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가는 소경에게는 단호하고도 간절한 경고가 필요하다. 이 소경을 향해 경고를 발하는 사람은 그를 사랑해서 외치는 것이다. 스펄전은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죄인들에 대한 더운 눈물을 가슴에 품고 회개를 촉구한다. 또한 당위로서의 회개가 아니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그 피와 살을 주시고 그 심장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지극하신 사랑을 압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죄인의 영혼이 주께 굴복하게 한다.
스펄전의 설교는 죄인을 사로잡아 십자가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설교의 시작도 오직 복음이요, 그의 설교의 마침도 오직 복음이다. 오늘날은 이렇게 복음으로 똘똘 뭉친 설교를 극히 보기 힘들다. 오늘 우리가 스펄전의 뜨거운 복음 설교를 대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스펄전의 불같은 메시지가 우리로 빈손 들고 주께 나아가 십자가를 붙들게 할 것이다.
규장 편집국장 김응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