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는주기도문 - 김남준 [출판사:생명의 말씀사]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갈 때,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닮아가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다하여 주기도문을 자신의 기도로 드릴 수 있다면,
그는 최고의 영적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기쁨을 드리는 신자는 바로 그 주기도문의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갈 때,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닮아가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다하여 주기도문을 자신의 기도로 드릴 수 있다면,
그는 최고의 영적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기쁨을 드리는 신자는 바로 그 주기도문의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 제1장. 살아 계신 하나님 p. 29-59 중에서
[전략] II.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때 가장 먼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간략하게 “아버지여”라고만 되어 있지만, 병행 기사인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거룩하심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또한 기도를 올리는 동기가 이 세상에서의 삶의 현실에 있다고 해도, 기도를 올릴 때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땅에 있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에 대하여 세 장에 걸쳐서 해설하려고 합니다. 먼저 1장에서 ‘계신’이라는 구절에 대해, 2장에서는 ‘하늘에 계시다.’는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3장에서는 ‘우리 아버지여’라는 구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A. 신이 없다고 믿는 세대
먼저 ‘계신’이라는 이 호칭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필연적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없는 기도의 실천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님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만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해서 두 가지 무신론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사상적 무신론
첫째로, 사상적 무신론입니다. 이는 가장 고유한 의미의 무신론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와 같이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롬 1:28). 어느 시대이건, 자신들이 신의 존재를 믿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현대인들 역시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오늘날의 일만은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스스로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관한 증거들을 지워 버린 결과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마음으로 하나님이 결코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애초부터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나 도덕의 근거가 없습니다. 혹여 그들이 그러한 것들이 있다고 주장할지라도 매우 자의적이어서, 그 근거를 묻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만한 견고한 기초도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에 물든 현대인에게는 각자가 원하는 바가 곧 도덕의 기준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이야말로 모든 우주의 최고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물론 때로는 그들도 인간의 보편적 도덕률이나 공통적 선을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여느 집단의 가치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변하는 상대적인 것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진리조차도 언제나 잠정적인 것이지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략]
2. 실천적 무신론
둘째로, 실천적 무신론입니다. 실천적 무신론의 영향력은 사상적 무신론보다도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불신자들의 모든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은 무신론에 입각한 실천들입니다(시 10:4). 그러나 더욱 염려되는 부분은 오늘날 신앙고백자들의 실천적 무신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이것은 입술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고백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마음은 실제의 삶에서 하나님께 대한 공경이 없는 실천적 무신론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적 무신론은 신앙과 행위 사이의 불일치를 보여주어, 세상 사람들의 불신앙의 확신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지식적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지식이 그의 모든 신앙과 생활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지배적인 원리가 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략]
지금 우리는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무신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밖으로는 사상적 무신론에, 교회 안으로는 실천적 무신론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참된 기도의 내용을 배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존재하실 뿐 아니라 살아 계셔서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세계의 역사를 주장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배우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기도의 실천적 동기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으로 불타오르는 거룩한 경외심이어야 합니다. [중략]
III. 하나님께서는 살아 역사하신다
[중략] 인간 존재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실 뿐 아니라 살아 계시며, 단지 살아 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을 때에야 비로소 세계와 인간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안으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살아 계시고, 당신 밖으로는 완전한 각 위들 간에 흐르던 그 사랑을 생명과 함께 창조세계에 흘려보내심으로 당신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비천한 인간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아버지라고 일컬음을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온 땅과 만물 위에 뛰어나시며 탁월하신 하나님, 영원과 시간에 잇대어 존재하시면서도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무한하신 분이 영원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은 인간들과 교통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창조 목적을 떠났고, 비참하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차마 보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끊어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이 시킨 일이었습니다. 그 영적 생명과 사랑을 다시 우리에게 주셔서 참으로 사람답게 살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전히 복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거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복음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자체가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중략]
IV. 결론
[중략] 이 위대한 주기도문의 강론을 시작하면서, 저는 여러분에게 간절히 촉구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영적 부흥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십시오. 이제껏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왔다면, 눈을 들어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인생의 문제들은 모두 땅에서 생겨나지만, 그 해결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인격적인 원리도 아니시고, 자연과 구별할 수 없이 만물과 섞여 계신 분도 아니시며, 세계와 상관없이 모든 사물들 위에 초월해 계신 분도 아니십니다.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모든 만물들을 초월하시면서도, 안 계신 곳이 없이 계시며, 인간의 지성에 말을 건네시고 사랑하십니다. 신자들의 영혼과 교통하사 그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만큼 우리에게 커다란 소망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태껏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며, 자기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인 줄로 알고 살아왔다면 이제 마음의 눈을 들어 거룩하고 위대하시며 온 땅과 만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인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십니다.
신앙은 바로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과 엄위하심 앞에서 떨리는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을 경험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렇게 우리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존의 마음의 표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