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절대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굵직한 사건들이 어떤 의미이며, 그리스도의 재림과의 연관성에 관한 성경의 정보는 무조건 믿어도 좋다. 예수님은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시대의 징조를 분간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자가 지혜롭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인간 통치 시대가 막을 내려가는 지금, 세상의 징조를 분간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들이 바로 성경 안에 있다. 이 책에서는 열 장에 걸쳐 이런 단서들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의 징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경각심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깨우치는 것이다.
서문: 징조를 알라, p. 15
선견지명이 있는 전 세계의 정치인들은 임박한 위기를 느끼며 태양열과 풍력 같은 대체 에너지와 자동차용 대체 연료의 개발 및 사용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를 보면, 바이오 연료를 사용한다 해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라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바이오 연료는 석유 의존과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구해주기는커녕, 석유 필요량을 살짝 줄여주는 대가로 식량 가격을 끌어올려 세계 기아를 악화시킨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와 콩 작물을 전부 연료로 사용한다 해도 연료 수요의 20퍼센트만 맞출 수 있다.
2장 주시해야 할 현실, p. 52
성경의 하나님과 코란의 알라는 전혀 닮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이가 나서 융화될 가능성조차 없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분이시다. 반면 코란에 따르면, 알라는 너무도 지고하여 인간이 알 수 없는 존재다. 성경의 하나님은 지성과 감정, 의지를 지닌 인격적인 존재이시다. 반면 이슬람교 신학은 알라를 인간적 존재로 해석하지 말라고 잘라 말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지만 알라를 영이라고 말했다가는 대번에 이슬람 진영에서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이 날아올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세 위격을 지니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코란은 삼위일체를 이단으로 치부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알라는 인간을 향한 감정 따위는 없는 존재다. 성경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지만, 코란에는 구세주나 중보자 얘기가 전혀 없다. 성경의 하나님과 코란의 알라는 전혀 다르다. 이 둘을 동일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
4장 이슬람의 테러리즘, p. 113-114
에스겔의 리스트에 등장하는 다음 이름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주로 짝을 이뤄 나타나는 메섹과 두발이다. 예전에는 메섹과 두발이 모스크바와 토볼리스크의 옛 이름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메섹과 두발을 러시아의 도시로 보는 학자가 거의 없다. 한 가지 이유는 에스겔서에 두 도시가 고대의 두로와 거래를 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사람과 놋그릇을 가지고 네 상품을 바꾸어 갔도다.”겔 27:13 고대의 두로현재의 레바논가 모스크바와 시베리아의 토볼리스크와 거래를 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따라서 메섹과 두발은 현재 터키의 일부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8장 새로운 악의 축, p. 192
왜 므깃도인가? 왜 이곳에서 인류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는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군사 영웅 중 한 명이 그 답을 말해주었다. 1799년 나폴레옹은 동쪽 정복과 로마 제국의 재건을 완성시킬 전쟁 전에 므깃도에 서서 광활한 아마겟돈 평야를 바라보며 선포했다. “이 광대한 평야에는 세상의 모든 군대가 모일 수 있다…전 세계에서 이곳보다 전쟁에 더 적합한 곳은 없다…지구 전체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전장이다.”
9장 아마겟돈을 대비한 무장, p. 219
뉴스를 읽거나 인터넷에 접속하면 가족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으며, 그러한 기사나 미디어 생산물이 자치, 가족, 교회, 시민 정부 이 네 종류의 지배 체제를 모두 존중하고 있는지 유의해서 살펴보라. 매체에 나오는 기독교 교회는 구제를 베푸는 기관이라기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엄격하기만 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표현될 때가 많다.
12장 미디어의 영향에 대해 올바른 질문하기, p.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