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출판사:홍성사]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법조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법학자 김두식 교수가
지금껏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슬픔’, ‘절망’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가슴으로 안고 풀어가는 우리 시대 교회론!
법조계의 이단아, 한국 교회를 말하다!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교회 내의 자성의 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그래서인가. 출판물 가운데도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이 왕왕 출간되고 있다. 그중 한완상 교수의 《예수 없는 예수 교회》(2008), 《한국 교회여, 낮은 곳에 서라》(2009, 이상 포이에마), 김진 교수의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등은 한국 교회 안에 ‘예수 없음’을 날 서게 지적하며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 법조계의 이단아로서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제국》으로 불평등한 법의 실상과 법조계의 비리를 특유의 필치로 파헤치며 화제를 모은 김두식 교수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교회 고민을 다룬 책,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홍성사)를 펴냈다.
목사를 구약 시대 ‘제사장’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양 여기는 한국 교회 현실에서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가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 책을 쓰는 일을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신앙 양심은 한국 교회를 지켜만 보고 있게 하지 않았다. 처음엔 성경답지 못한 교회에 화가 나 글을 써 내려갔지만, 퇴고를 거듭하면서 교회다운 교회, 예수 있는 교회를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원고를 다듬어 나갔다.
그 때문인지 그의 책은 여느 교회 비판서와 사뭇 다르다.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을 느끼며 읽다 보면, 어느새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의 뜻을 담은 교회, 예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은 ‘희망’을 품게 한다. 특히 그간 이사, 임지 변경, 유학 등을 이유로 여러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의 독특한 신앙 경험은 사변적이거나 학자연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철저히 평신도로서 느낀 교회의 여러 모습을 듣고 있노라면, 지난날 어느 청년의 자취방에 모여 라면 한 대접에 이야기 나누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해진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 교회 이야기, 내가 다니는 교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한국 교회 현실에서 시작하여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16세기 기독교 국가화 된 유럽 교회의 모습, 그리고 역사 속에 나타난 실험적 기독교까지, 인문학적․신학적․문학적․경험적 요소를 총동원하여 ‘교회다운 교회, 예수 있는 교회’를 위한 ‘문제제기’는 물론 ‘공동체적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데 있다. 다행히 그가 제안한 작은 실험들은 몇 명의 동지만 있으면 교회 안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들이기에 기대가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헌금하면서 봉투에 “○○○ 형제에게 드립니다”라고 쓰면 그 헌금은 회계를 통해 바로 그 형제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조별 나눔 모임이나 친구들을 통해 ○○○ 형제에게 요즘 집에서 오는 생활비가 끊겼다더라, 또는 과외가 끊겼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알아서 ‘지정 헌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지정 헌금을 하기 위해 과외를 한 개 더 하거나 남몰래 새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지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지정 헌금을 받은 사람들은 누가 준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하나님이 주신 걸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기회가 되면 또 어려운 형제자매를 위해 지정 헌금을 했습니다. ……이런 실험은 성년들보다는 청년부나 대학부에서 훨씬 손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다니던 교회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청년부와 대학부에 신실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교회 지도부는 가급적 청년부와 대학부에 개입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20년 전에 젊은이들을 믿고 그런 실험을 허용해 준 교회가 있었다는 게 고맙고 놀라울 뿐입니다. 청년은 좀 실수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을 하려고 할 때 그걸 지원해 줄 수 있는 교회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그 밖에도 제가 제안하고 싶은 실험은 많습니다. 성가대를 없애는 대신 모든 성도가 10분쯤 먼저 예배당에 나와 함께 예배 시간에 부를 찬송가를 미리 연습하고 모두가 성가대가 된다든지, 한동네에 사는 젊은 부부 성도들이 공동 육아를 통해 숨 쉴 여유를 갖는다든지, 공동식사 준비를 통해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인다든지……. (324-325쪽)
대체로 교회에 불만을 품게 되면 다른 교회로 옮겼다가 그 교회에서도 상처를 입으면 아예 교회를 떠나는 게 수순이다. 하지만 김 교수의 제안처럼 “교회다운 교회를 상상해 보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이야기가 모여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면, 그 실험이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킬” 것이다. 예수께서는 ‘~을 해볼래?’라고 제안하지 않으셨다. 실천을 강조하며 ‘~하라’고 명하셨다. 실천이 따를 때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다.
(김두식 교수는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으로 ‘높은뜻푸른교회’와 ‘열매나눔재단’을 통해 저소득 빈곤층 이웃들을 돕는 일에 이 책의 인세 전액을 기부하기로 약속하였다.)
- 저자 인터뷰 -
1.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은 물론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역시 도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글쓰기는 어디서 비롯하나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대학 1학년 때 선교단체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아침 성경을 묵상하고, 저녁이면 그 말씀에 비추어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를 적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모든 글쓰기는 따지고 보면 성경묵상과 일기의 연장일 뿐입니다. 실제로 일기를 그대로 책에 옮긴 부분도 상당히 많습니다.
2. 법학자로서 인문사회과학 책이 아닌 기독교 책, 특히 교회를 비판하는 책을 쓰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듯합니다.
《헌법의 풍경》,《평화의 얼굴》도 사회과학서적으로 분류되기는 합니다만, 모두 교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늘 기쁨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슬픔의 근원이기도 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신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고, 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법학 책보다 신학 책을 더 열심히 읽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교회에 대해 남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나게 부담스런 일입니다. 신학자도 아니면서 그런 부담을 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 때문에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뤄 왔는데, 2009년 미국에서 일 년을 보내는 동안 모든 상황이 이 책부터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쓰고 싶어서 쓴 책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등을 떠밀려서 쓴 책입니다.
3. ‘영화관식 교회’, ‘보험회사에 책임을 넘겨준 교회’ 등 한국 교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성경적 교회와 오늘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회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다운 교회’ 되기를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것 같습니다. 성경이 ‘낮아짐’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한국 교회는 철저히 ‘높아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낮아지기 위해서는 먼저 높아질 필요가 있다”는 이상한 복음이 청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괜찮다는 교회들도 돈을 모아 가난한 이웃에게 조금씩 가져다주기만 할 뿐, 가난한 이웃을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관 같은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개인기로 충만한 설교를 듣고 집으로 들어오면 그것으로 땡입니다. ‘세상 속의 교회’로 끝없이 낮아지고 이웃을 섬기며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공동체가 오히려 세상의 상향성 논리에 매몰되어 ‘교회 속의 세상’에 주도권을 내어주게 된 것이지요.
4. 바른 교회, 예수 있는 교회를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제안해 주셨는데, 그러한 실험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속한 바로 그 공동체가 실험을 시작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라면 담임목사님께 무슨 개혁 방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조그만 청년부 단위부터 작은 실험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장년이라면 구역 예배에서부터 할 수 있는 실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 책 초고를 읽어 보고 전체적으로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만, 사실 한국 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인들이 목사님들을 참아 주고 용납해 주고 긍휼히 여기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절반은 넘을 겁니다. 그런 고민을 주변의 형제자매들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사랑에 기초한 실천 방안을 찾다 보면, 교회도 훨씬 생동감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제 책이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5. 책을 쓰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적이 있다면?
책 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교회에 대해 책을 쓴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를 않아요?” 하고 묻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책 전체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첫 원고가 교회에 대해 ‘화가 나 있는’ 내용이었다면, 최종 원고는 교회다운 교회를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내용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희망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6.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현란한 개인기로 포장된 설교에만 빠져 지내지 말고, 성경 그 자체를 한번 제대로 묵상해 보기를 권합니다. 제 책은 안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기도하면서 사복음서를 쭉 읽고 나면, 정말 멋진 예수님, 생명력이 넘치는 박력 있는 논쟁자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분이셨나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 ‘깜짝 놀람’을 경험하고 나면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깜짝 놀람’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 본문 맛보기 -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환풍기 장로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때쯤, 교회에서 선거를 거쳐 몇 분의 장로님이 선출되셨습니다. 아주 큰 부자는 없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안정된 수입이 있는 분들만 장로님이 되셨지요. 선거가 끝난 뒤 중등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환풍기 장로’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장로로 선출된 집사님 한 분은 신앙 경력이 짧고 교인들의 지지도 많지 않았지만, 교회 본당에 대형 환풍기를 설치해 준 덕분에 목사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장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겨우 중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이었는데도 우리는 그 장로님 앞에서 “안녕하세요”라고 힘차게 인사하고선 뒤에서는 ‘환풍기 장로’라 비웃었습니다. ……거룩한 교회에서 사람을 뽑을 때에도 돈이 나름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린 저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남겼습니다.
이후 교회에서 성장해 가는 동안 저는 여러 직분을 정하는 데 돈보다 더 큰 요소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지위였습니다. 사회적 지위에 비하면 돈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호사인 사람은 교회에서도 똑같이 변호사로 대접받고, 의사인 사람은 교회에서도 똑같이 의사로 대접받습니다. 아무리 신앙 연륜이 짧아도 이른바 ‘사’ 자 돌림 직업을 가진 사람은 쉽게 목사님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며, 교회 의사 결정 구조에도 남보다 훨씬 빨리 접근할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있는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14-15쪽)
○영화관식 교회
설교자는 내리 설교만 하고, 교인들은 그저 듣기만 하는 구조 속에서 좋은 설교가 나오기란 어렵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일 대 백, 일 대 천, 혹은 일 대 만으로, 한 명은 떠들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듣기만 하는 ‘영화관식 구조’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한 명의 지혜는 나머지 전체의 지혜를 압도하고, 한 명이 받는 계시는 나머지 전체가 받는 계시를 압도합니다. ……오직 목회가 생업인 목사님들은 주일 예배, 저녁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등 최소한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의 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에 반해 삶의 현장에서 무궁무진한 간증 소재들을 만나고 있는 신자들은 자기 삶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님들은 더 아름다운 설교, 감동을 주는 설교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 노력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남이 쓴 예화집, 설교집, 주석집을 읽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 표절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런 한국 교회 목사님들의 모습은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라기보다는 중소기업 사장님에 가깝습니다. 자기 손으로 일군 기업에 대한 강한 애착과 소유욕, 그 기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는 의지, 그리고 그 기업의 방향과 질서는 자기 혼자서 정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태도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25-26쪽)
○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
개인적인 성공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생각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명문 대학에 합격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에서도 환영받지만, 시험에 실패하여 정작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누를 끼친 사람으로 평가절하됩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런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때까지 잠수를 타게 되지요. 재수 끝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화려하게 부활한다면 다행이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시험에 실패하거나, 직장을 잃거나, 암에 걸린 사람은 가장 먼저 ‘도대체 교회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부터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며 교회를 떠납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늘 성공한 사람들만이 넘쳐 납니다. 성공한 사람들만이 넘쳐 나는 교회를 과연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41-42쪽)
○교회와 국가에 책임을 떠맡긴 교회
교회의 할 일을 빼앗아 간 것은 국가만이 아닙니다. 간단한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나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칩시다. 그에게는 아내와 어린아이들이 딸려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우선 목사님과 교인들이 장례식장을 방문해 장례를 집전하고 가족들을 위로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겠지요. 부조를 얼마나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남겨진 가족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두 배의 돈을 집어넣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입니다. 남겨진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현실적 생계의 문제는 더 이상 교회의 책임이 아닙니다.
……죽은 남편이 보험을 많이 들어 놓았다는 소식을 장례식장에서 듣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님과 교인들은 “하나님이 미리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으니 얼마나 감사하냐”며 기쁨을 나눕니다. “세상에 없어도 자식을 유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아버지가 있다”거나, “10억을 받았습니다”라고 아내가 조용히 고백하는 보험 광고 속의 세상에 교회도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같은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람들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보험이나 많이 들어 놓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272-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