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눈물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눈물은 거꾸로 흐릅니다. 눈에서 흘러 하늘에 가 닿습니다.
눈물의 사람이 되십시오. 눈물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이 흘린 눈물을 위로와 감사의 병에 담아주십니다.
<타깃> -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자
- 삶과 신앙의 균형을 소망하는 자
-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통해 보다 깊은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길 소망하는 자
- 방지일 목사의 설교를 배우고 싶은 신학생, 목회자
<독자의 Needs> - 한국교회 최고령 원로 목사가 전하는 깊고 명쾌한 신앙의 진수를 맛본다
-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
-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조들이 밟아온 신앙의 여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행보에 도전을 준다
성령의 역사가 눈물의 병을 채웁니다 성경강해를 완간한 후 내 평생의 눈물에 대한 글을 써 보았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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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눈물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눈물은 거꾸로 흐릅니다. 눈에서 흘러 하늘에 가 닿습니다.
눈물의 사람이 되십시오. 눈물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이 흘린 눈물을 위로와 감사의 병에 담아주십니다.
<타깃> -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자
- 삶과 신앙의 균형을 소망하는 자
-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통해 보다 깊은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길 소망하는 자
- 방지일 목사의 설교를 배우고 싶은 신학생, 목회자
<독자의 Needs> - 한국교회 최고령 원로 목사가 전하는 깊고 명쾌한 신앙의 진수를 맛본다
-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
-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조들이 밟아온 신앙의 여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행보에 도전을 준다
성령의 역사가 눈물의 병을 채웁니다 성경강해를 완간한 후 내 평생의 눈물에 대한 글을 써 보았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두란노서원에서 여기에다 몇 편을 이어 새롭게 책을 펴내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복된 말들이 있는 것을 알았으나 그대로 두기로 했다.
실담들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내 눈앞에 나타나 원고를 정리하면서 또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화상찬 격이기도 하지만 실화이니 내게는 감격이 그리도 큰 것이다. 책을 읽는 분들도 한 성령의 역사가 계실 때에 나와 똑같은 감정에 잠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에는 욥과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를 읽으며 내가 체험한 것을 부가했다. 모든 신앙인이 거칠 단계이며, 보혜사의 같은 역사가 읽는 이들에게도 역사하실 것을 믿는다.
옛사람의 글을 정리하느라 애쓰신 두란노서원 출판부 여러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 2010년 4월 방지일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시편을 읽을 때의 감격과 평남 중화군 해압면 삼합리교회 집회 때에 받은 은사가 실로 커서 지금까지 이를 잊지는 못한다. 그 은사가 생생하게 늘 내게 맴돈다. 이를 한 토막의 기록으로 남겨 보는 이들에게도 같은 정서의 맛을 보여 드리자는 뜻에서 눈물에 얽힌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좋은 소재임에는 틀림없는데 글이 더 우아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내게서는 나대로의 표현밖에 다른 것이 나올 수는 없어 성경강해서를 다 마치고 적어보았다.
나는 이 글을 초하면서 그 눈물의 현장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도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손에 안팎으로 가득히 쓰여진 책을 받아서 그 인을 떼시며, 그 글을 알 사람이 있는가 물을 때에 하늘이나 땅에나 어디에도 이 인을 뗄 사람이 없음을 알고 울었다는 말이 있다. 천사의 소리가 컸으니 요한의 울음소리도 컸으리라고 생각된다. 할 수 없으니 울었을 것이다. 요한에게 딴 방법은 없고 우는 것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그 말씀을 볼 때 ‘우는 일이 있구나, 아니 울어야만 되는 구나하고 깨달았다. 장로 가운데 한 장로가 울지 마라 이새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능히 이 인을 뗄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준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는 울음 속에는 온갖 사정이 다 담겨 있으니 말이 없어도 우리 하나님이 울음 속의 말을 잘 들어 주신다. 우리에게는 합심기도가 있다. 집중사격이란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집중 울음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나약함을 아뢰면서 함께 합심 울음을 터트리며 하나님께 나아가 보자. 우리 하나님께서 안 들으실 수 없을 테니 어떤 문제든지 그 앞에 가지고 나아가서 큰 소리로 울어 보자. 어린 아기처럼 울어 보자. 이런 울음은 결코 무시당하지 않는다. 집중하여 한 소원의 울음을 터트려보자.
- 1991년 7월 방지일
1. 눈물의 병 중국에서 선교사로 재임 시(1937~57년) 다섯 번의 정변을 당하면서, 어려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때면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다.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사닥다리요, 눈물 속에 나타나는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체험을 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성경에는 욥의 고난 다음에 시편이 이어진다. 욥의 수난이 애처롭기는 하지만, 그 고난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찾는다. 그리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의 기도 속에서 그를 무지개로 위로하신다. 그러면 감사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감사의 극치는 찬송이다. 시편은 감사요, 찬송이다. 시편을 지나면서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시편 다음에는 잠언이 나온다. 사람의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처세관이 바르게 서면, 그 다음에 전도서가 나온다. 세상만사는 헛되고 헛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를 다 지나면 마침내 임마누엘 안에서 항상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가다.
욥과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등의 이 지혜문은 모든 신앙이 거쳐야 할 신앙 단계라고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책 끝 쪽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다윗의 눈물 병> 시편은 기도, 감사, 찬송으로 언제나 말씀을 통하여 기도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는 생활에 신앙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는 공산치하에서 9년간 시편을 여러 차례 읽었다. 어느 날 시편 56편 8절을 읽다가 ‘다윗이 이 비결을 알았구나’라면서 숨을 가다듬으며 크게 감격한 기억이 아직까지도 새롭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다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
이 말씀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다윗의 눈물 병(甁)에 눈물이 넘치는 것이 눈에 선하다. 눈물이 가득한 이 병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켰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 병, 눈물 병…….’ 하며 되뇌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유리함을 계수하셨는데,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의 유리함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산과 들만이 아니었다. 국외까지 유리하면서 어느 때는 미친 사람 흉내까지 내야 했다. 그 신세가 실로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물리친 장한 소년으로, 사울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는 데서 사울의 마음에 천천은 내게, 만만은 다윗에게 돌리니 앞으로 왕좌를 빼앗길 거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다윗을 없애려는 일념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간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사울은 독심을 품고 다윗을 없애버리려고 창을 던지고 군사를 보내기도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다윗이 유리하여 떠돌아다니자 그를 잡으려고 군대를 동원해 친히 뒤쫓곤 했다.
마침내 다윗은 국외로 망명까지 하게 된다. 이리하여 그는 유랑객으로 국내와 국외를 전전한 때가 적지 않았다. 다윗은 이런 유리함을 주께서 알아주신 것을 “계수하셨으니”(시 56:8)라고 성경에서 표현하고 있다. 육체적·정치적으로 망명객이었으나, 신앙적으로 유리함은 더욱 가련했다고 하겠다.
다윗이 우리아 신상에 범한 죄상, 그 일은 그대로 버린 바 되지 않았다.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범한 죄, 자신의 말대로 하나님께 범한 그 죄로 그분을 노엽게 했으므로 하나님을 떠나 유리 방황하게 되었다. 실로 하나님께서 계수하고 계심을 다윗은 다니엘서에 나타난 대로 “메네 메네 데겔”(단 5:25)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느 심령이나 하나님을 떠나 유리할 때 그 유리한 시간과 그 유리한 지방, 그 유리한 사건들을 주님께서 계수하고 계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깨달음으로 다윗은 눈물을 흘리게 된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시 6:6-8).
다윗은 자신이 흘리는 눈물을 하나님께서 다 거두셔서 병에 담아 두시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노여움이 그 가지고 계신 눈물 병으로 말미암아 안개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을 느꼈다. 다윗의 흘린 눈물의 양이 그 얼마인가! 밤마다 흘린 눈물이 자기 침상을 띄우며 자기 요를 적시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양을 흘렸을까? 밤마다 흘린 그 눈물의 양을 계수함도 유리함에 대동했을 것이다.
심지어 시편에는 그 대적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지기까지 했다는 고백도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눈물이 하나님의 병에 담겨지므로 대적을 향하여 호언장담할 수 있게 되었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시 6:8)는 호령까지 할 수 있을 만큼 다윗은 담대해진 것이다.
<회개의 곡성> 그 대적, 그 행악자는 과연 누구일까? 정적으로 유리당한 적이 있는 사울의 집안일까? 왕위에 오를 때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던 숙적 블레셋일까? 아니면 미디안, 암몬, 모압일까? 그 많은 적이 어떻게 다윗으로부터 떠나가게 되었을까?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시 6:8b).
다윗의 눈물과 그의 대성통곡하는 소리를 여호와께서 보고 들으시니 그를 향한 행악자들은 크게 질겁하여 떠나고 말았다.
여호와의 보시고 들으심에 질겁한 가장 큰 행악자는 음행 죄를 범한 다윗 자신이었다. 우리아를 자기 손 하나 대지 않고 적진에 고립시켜 죽게 만든 자는 바로 다윗 자신이었다. 충성했던 다윗을 살해하려고 했던 사울의 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아처럼 충성된 종을 적에게 죽게 했으니 실로 간악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행악자는 다윗 자신이었다. 바로 범죄한 자 다윗이었다. 다윗은 자신을 향해 육아(肉我)를 그한테서 떠나라고 명한 것이다. 다윗은 이처럼 귀한 체험을 했다. 자기의 곡성으로 자신의 육아를 쫓았던 것이다. 이는 다윗 그 개인에게만 국한된 진리는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된다.
회개의 곡성에는 어느 원수도 견디지 못한다. 적을 이기는 강한 무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도록, 여호와께서 보시도록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출 3:7).
그들이 고난 중에 민족적으로 운 그 울음을, 그 곡성을 여호와께서 들으신 것이다. 그들을 적으로부터 구출하여 내신 것도 다윗의 곡성을 들으셨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유리했는가? 여호와의 계수함을 입지 않았는가? 여호와께서 우리의 유리함을 계수하신다. 그가 “메네 메네 데겔” 하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윗이 밟은 길을 따라 밤마다 침상을 띄우는 그 눈물이 내게 있도록 하는 일이다. 대성통곡하는 곡성을 여호와께서 들으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악자 된 내 적(원수)은, 나를 괴롭힌 내 죄성은 나에게서 추방당하게 된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눈물을 모두 병에(병도 큰 병이리라) 담아 두실 뿐 아니라 이 사실을 주님의 책에 다 수록하여 두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의 눈물이 어떤 일 때문에 흘려진 기록이다. 그 기록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밤마다 침상을 띄운 눈물이었으니, 이는 다윗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회개한 자들이 흘린 눈물의 기록이 그 책에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혹시 나는 잊었는지 모르지만, 그 책에는 어떤 일로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의 눈물을 흘렸는지 다 수록되었으니 나중에 하늘 나라에 가면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물질불멸은 물리학의 서두에 나온다. 물리적 변화, 더 나아가서 화학적 변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물질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어찌 내 눈물의 양이 증발되어 없어지겠는가! 내 눈물의 원인은 결코 흐려져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보배롭게 여기시는 것으로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때때로 이 성구를 되뇌곤 한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