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 유재덕 [출판사:브니엘]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 유재덕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 유재덕
2천 년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쏙쏙 파노라마로 즐긴다!
기독교의 처음 출발에서부터 흥망성쇠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에 이르는 2천 년의 발자취!
기독교가 박해를 받은 이유는, 성경의 정경이 결정된 시기는,
이슬람교가 태생하게 된 배경은, 피의 역사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 배경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 분량은, 소심한 수도사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동기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분열 배경은,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난 까닭은,
개신교의 갈등과 종파간 분열은, 본훼퍼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치른 대가는,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 같은 복음주의자들의 역할은, 그리고 기독교의 미래는?
이 책은 기독교의 역사를 쉽고 재매있게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교회사를 다룬 책들과 달리 내용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주로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루거나 아니면 대표적인 인물을 나열하는 데 치중하던 기존의 교회사 책들과 달리, 기독교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배경이 되는 역사적 상황과 지금껏 조명을 받지 못한 인물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200여 컷의 그림이나 사진,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넣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기독교가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라 세계사의 중심축이었으며, 세계사와 더불어 변화, 발전한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역사 속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이 책은 이런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1. 신앙의 뿌리가 약해 쉽게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분.
2.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기독교의 뿌리를 가르치고자 하는 교사분.
3. 신학교나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미래 목회자분.
4. 교인들에게 기독교 역사를 쉽게 가르치고자 하는 목회자분.
<책 속으로>
“네로는 험악한 민심을 의식해서 궁중 창고를 개방하고 시민들에게 크게 인심을 베풀었다. 시중의 빵 가격도 절반이나 내렸다. 하지만 그의 기대처럼 자신을 비난하는 소문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네로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희생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눈에 띈 게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였을 뿐 아니라 로마인들 사이에서 거의 인기 없는 신흥 종교 집단이라서 간단한 상대처럼 보였다. 네로는 그들을 제물로 삼아서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15쪽, 그리스도인은 누구일까 중에서
“사실이 그랬다. 전투를 벌이기 하루 전에 콘스탄티누스는 기도를 올렸다. 모르긴 해도 평소처럼 태양신에게 기도했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을 바라보자 십자가가 보였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왔다. “이 표적으로 승리를 얻으리라!” 또 다른 전설은 꿈속에서 그리스도가 콘스탄티누스의 방패에 기독교의 상징을 그려 넣도록 지시했다고 전한다. 문양은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첫 두 글자인 XP처럼 생겼다. 아무튼 다음날 아침 콘스탄티누스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들의 방패에 이 글자들을 그려야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개인 전투 깃발에도 십자가를 그렸다. 그는 자신의 종교체험을 통해서 승리를 확신했고, 누가 보더라도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켰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역사상 최초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속의 권력 다툼에 연루되었다.”
86쪽, 기독교의 승리와 실패 중에서
“동방과 서방교회는 줄곧 불화를 거듭했다. 물론, 겉으로는 서열이 존재했지만 동방교회는 황제가 사라진 서방에서 고집스레 수위권을 주장하는 교황의 권리를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로마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비잔티움의 황제를 등에 업고서 거들먹거리는 동방교회는 지상의 진정한 교회를 자처하는 로마교회에는 눈엣가시였다. 때문에 교황들은 비잔티움의 황제와 결별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황제와 동방교회를 분리시키려고 애썼다. 이런 심각한 갈등 속에서도 표면적으로 동서 교회는 스스로를 여전히 한 몸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샤를마뉴가 황후 이레네에게 청혼했을 때 실제로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잔티움 귀족들의 반대와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동서 교회가 주고받은 세 차례의 공방으로 완전히 분열되었다.”
168쪽, 기독교 세계의 분열과 이민족의 개종 중에서
“만성절 하루 전인 1517년 10월 31일, 95개의 논제가 비텐베르크성의 교회 정문에 내걸렸다. 논제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오직 하나님만 회개하는 인간을 용서할 권리가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는 영생을 보장받을 수 없다. 루터의 소란과 여론 악화를 전해들은 교황 레오 10세는 투덜댔다. ‘루터는 술 취한 독일인이야. 술에서 깨어나면 생각을 고쳐먹겠지.’ 이것은 성미가 급하고 맥주를 즐기던 루터에 대한 정확한 평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도 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술꾼은 한 술 더 떠서 예리한 비수로 교황의 심장을 겨누었다.”
254쪽, 새 하늘, 그리고 새 땅 중에서
“‘종교 없는 기독교’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디트리히 본훼퍼는 세계가 하나님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불순하게 비종교적으로 변했다고 비판했다. 니체를 비롯한 이들이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해서 변질한 교회에 면죄부를 발행했다. 본훼퍼는 그와 같은 현실에 대해서 기뻐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성서의 하나님과 더 가까운 성숙한 세계, 즉 약하고 고통을 받으면서 박해를 겪는 이들의 세계를 희망했다. 그리고 권력이나 적대감과 맞서 싸우며 하나님과 인간들이 살아 있는 만남의 장소로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으로 들어가는 교회의 모습을 꿈꾸고 실천했다. 본훼퍼는 1933년 7월 23일 주일에 자신의 핵심 사상을 이렇게 설교했다. ‘교회여, 교회로 남으라. …고백하라. 고백하라. 고백하라.’”
400쪽, 근대를 지나 다시 새로운 천 년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