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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없는 예수 교회 - 한완상 [출판사:김영사]

예수 없는 예수 교회 - 한완상

예수 없는 예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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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참 지식인, 한완상 박사의 교회 힐링 메시지!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역사적 예수의 체취와 숨결, 그리고 그분의 꿈

베스트셀러 《민중과 지식인》에 이은 한완상 박사의 또 하나의 역작! 교회의 승리주의적 태도, 물량주의, 배타적 독선에 울리는 경종, 그리고 겸허한 자기반성과 세상 속의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시한 책!

종교적 선민의식과 종파주의를 초월했던 예수, 그에게서 한국 교회가 배워야 할 평화적 저항, 익살스러움, 날카로움, 통쾌함, 당혹스러움, 탄성을 발하게 하는 해학적 감동, 신앙의 역설을 애정 어린 질책과 함께 절제된 언어로 풀어냈다. 이를 통해 양적 팽창 속에서 지속되어온 반지성적 풍토와 기복적 신앙, 경직되고 불투명한 교회운영과 권위주의적 교회 구조, 예수의 삶이 증발되어버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천박한 이기주의를 치료할 해법을 제시한다. 밖으로 굽으시는 하나님의 팔, 우아한 패배의 원리, 실패와 자기 부인의 십자가 정신, 자기 비움과 남 채움의 원리 등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동하는 탐욕과 독선의 힘을 비워내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체득해야 할 삶의 방식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인간적인 체취가 묻어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해석을 통해 한국 교회의 일그러진 교회상을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회복시켜줄 힐링 메시지!

>>책 속에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주요 개신교 교파마다 세계 제일의 교회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터에, 한국 기독교를 ‘개독교’라 폄하하고 개신교 성직자를 ‘먹사’로 희화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고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안티 기독교의 온갖 비난과 질책은 한국 개신교회를 향한 이 시대 ‘돌들의 외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역행하는 교회가 불러일으킨 자업자득의 결과 같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분노하기에 앞서, 왜 한국 교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진솔한 자기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 pp.6-7

예수를 열심히 믿는 신자일수록 그들의 하나님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옛날 유대종교에 열성이었던 신자들처럼 말입니다. 종교적 선민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들의 하나님을 배타적인 신으로 믿고 싶어 합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그 팔이 안으로만 굽으실까요? 온갖 사이비 종파주의자들이 굴을 파거나 숨어 살면서 종파적 이기주의를 극대화하는 것도, 그들의 하나님이 종파적 신이기에 그 팔은 항상 안으로만 굽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 p.41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마 16:24). 여기에서 ‘자기부정’과 ‘십자가 지기’는 같은 뜻의 말씀을 두 번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부정은 자기 비움과 같습니다. 자기 비움은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동하는 탐욕과 독선의 힘을 비워내는 일입니다. 십자가 지기는 자기 지움을 뜻합니다. 영어로 ‘cross out’은 지워 없앤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자기 탐욕과 독선을 지워 없애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예수따르미가 지켜야 할 기본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걸어가신 길이 이러할진대,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를 지워 보려는 모든 노력을 단지 그것이 교회 테두리 밖에서 이뤄진다는 이유로 정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종교적 독선주의, 배타주의, 이기주의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언뜻 보기에 예수따르기에는 자기 패배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온갖 탐욕의 경쟁에서 스스로 지기를 자청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따르미의 상징으로 십자가보다 두 번 지우는 결단의 상징인 ×가 더 적절한 듯합니다. 실제로 십자가를 질 때 생기는 십자가의 모습도 이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새로운 기독교 상징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 pp.217-18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야말로 우아하게 지면서 마침내 모두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새로운 삶, 멋있게 짐으로써 함께 이기는 새로운 삶의 가치를 오늘날 개신교 지도층이 가장 이해를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 한국이나 구미에서나 크게 다를 바 없어 더욱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그 원인은 주로 물리적, 물질적 힘에 의한 승리, 그에 따른 평화를 오랫동안 숭배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이나 한국에서 교회 지도자의 주류는 승리주의 가치를 기독교 본연의 가치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적 기반이 강한 교회이기에, 힘을 통한 승리와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역사적 예수 운동의 원래 의도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교인일수록 예수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정상적인 크리스천의 삶인 양 착각하는 듯합니다. 하기야 성서도 이 문제를 언급하는 데 일관성이 부족한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 pp.252-53

  • 저자 한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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