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회개하라 -조셉 얼라인 [출판사:규장]
돌이켜 회개하라 :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 보내는 경종 - 규장 컨버전 북스
당신이 얻은 ‘구원’, 진짜인지 확인하라!
확실히 보여줄 열매가 있는가? ‘완전히 새롭게 된 당신’을 증명해보라.
당신의 회개와 구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꼭 확인해보라!
1671년 출간 이후 수많은 사람을 회개시킨 조셉 얼라인의 고전 중의 고전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교회 다니고 세례만 받으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교회 봉사 잘하고 직분자면 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씀은 듣고 알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
회개했다고는 하지만 삶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사람
당신은 아직 돌이키지 않았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라!!
당신이 ‘진짜 회개’로 ‘진짜 구원’을 받았다면
당신은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치며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일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지금 당신의 상태는 어떠한가?
감사보다 불평이, 기쁨보다 근심이, 사랑보다 미움이 더 많지 않은가?
성경을 읽는 것보다 TV나 인터넷을 더 즐기고 있지 않은가?
기도하는 것보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데서 더 위로를 받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그런 상태라면, 당신이 받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구원’을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살펴보고 스스로 확증해보라!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과 삶에는 그런 모습들이 없다고 성경은 단언한다.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죄인들이 머뭇거리고 변명을 늘어놓고 말도 안 되는 반론을 제기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당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철저히 다루실 때까지 쉬지 말라. 당신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잃어버린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하늘의 경고를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수십만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들이 ‘회개하지 못한 상태’에서 눈을 떴다고 고백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었음을 명심하라!
[ 한국어판 편집자의 글 ]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함을 받으라!
회개에 대한 책은 잉크로 쓰지 않고 눈물로 쓰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통곡의 회개를 한 자만이 남에게 회개하라고 할 수 있다.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사랑’(딤전 1:15)에 압도되어 한없는 눈물을 뿌려본 자만이 회개를 촉구할 수 있다. 전도자 D. L. 무디도 지옥에 대한 설교를 눈물을 뿌리지 않고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눈물의 회개를 한 자만이 눈물의 회개를 외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자신도 회개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회개하라고 하니 아무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생명 얻는 회개’(행 11:18)를 전혀 해보지 않은 자들이 교인으로 등록하고, 직분자가 되고 교회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교회가 회개한 자들의 모임이 아닌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모임이 될까 심히 두렵다. 교회가 회개한 자들의 모임이 되면 그 교회에 하나님나라가 임한다. 왜냐하면 “회개하라 천국(하나님나라)이 가까웠느니라”(마 4:17)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한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체험할 것이요, 회개하지 않은 교회는 세상나라, 곧 짐승의 나라(약육강식의 나라)를 체험할 것이다.
이 책은 청교도 설교자 조셉 얼라인의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눈물의 절절한 호소와 천둥과 같은 회개의 촉구로 유명한 ‘회개 저서의 금자탑’인 《An Alarm to the Unconverted》를 현대적 감각의 유려한 우리말로 번역하고 새롭게 편집하여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리처드 백스터의 《회개했는가》(규장 역간)와 기독교 역사상 ‘회개에 대한 쌍두마차 격인 저서’로 평가되고 있다. 리처드 백스터의 책이 죄인들의 정서를 뒤흔들어 회개하지 않고 못 배기게 만드는 집요함이 있다면, 조셉 얼라인의 책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발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회개해야 하고,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심령에 거룩한 습기를 간직한 사람
회개는 아무나 촉구할 수 없다. 자신이 먼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고, 경건한 삶에 힘쓰는 가운데 지옥으로 떨어져가는 영혼들에 대한 눈물, 곧 거룩한 습기를 심장에 품은 자들만이 담대히 회개를 외칠 수 있다. 조셉 얼라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젊은 목회자로서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불신자 심방을 최우선으로 하며 영혼 구원에 힘썼던 자이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 흠뻑 적신 다음에야 하루를 시작하는 경건한 전도자였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채운 다음 하나님의 긍휼을 품고 구령(救靈)의 현장에 섰던 것이다.
그 사람이 정말 경건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그의 아내가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 얼라인의 아내인 테오도시아가 남긴 남편에 대한 회고담을 보자.
“남편은 새벽 4시 혹은 그 전에 일어났고, 주일에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그가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대장장이나 구두수선공이 먼저 일어나 일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는 매우 근심했다. 이런 일이 있으면 그는 ‘저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일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참으로 부끄럽소. 그들이 자신들의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보다 내가 주께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새벽 4시부터 아침 8시까지 기도하고 묵상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얼라인은 매일 새벽 그 심령을 하나님의 거룩한 불로 데웠고 그 다음 회개의 검(劍)을 휘두를 때 죄인들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가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회개의 촉구를 들어보라.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사람은 회개하지 않았으면서 아무 가책이나 감각 없이 그대로 살아가는 완고한 죄인이다. 대포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고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장난하면서 야단법석을 떨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보다 더 미련하고 미친 사람은 죄 가운데 계속 머무는 사람이다. 죄와 이혼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결혼할 수 없다. 당신 속의 반역자를 내쫓지 않으면 하늘과 화해할 수 없다.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눕지 말라. 죄와 결별하든지 영혼을 잃어버리든지 양자택일하라.”
이런 비수와 같은 말씀을 대할 때에 사람(성도)들은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처럼 “어찌할꼬!” 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전도자들의 텍스트북
이 책에는 얼라인의 뜨거운 회개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청교도 복음전도의 참된 모범을 엿볼 수 있다. 내용을 전달하는 표현법이 세대마다 다를 수 있고, 재능도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에는 진정한 복음전파를 위한 원칙이 담겨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얼라인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복음전도관을 정립한 신앙의 인물들이 많다.
조지 휫필드는 이미 옥스퍼드 대학생 시절 자신의 일기에 “얼라인의 《돌이켜 회개하라》가 내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라고 적었다. 찰스 스펄전은 “내가 어릴 적에 주일 저녁이면 어머니께서 얼라인의 책을 우리에게 읽어주시곤 했다. 그리고 내가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 오래된 책을 찾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스펄전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이 얼라인의 책과 백스터의 책이었다. 아, 그 책들! 나는 그 책들을 읽었다. 말 그대로 탐독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그의 마음이 청교도의 경건으로 불탔기 때문에 그가 얼라인과 휫필드의 뒤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1671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그 이래 개정판이 무수히 나왔다. 1702년 칼라미 박사는 “얼라인의 이 책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다. 성경을 제외한다면, (그 시대 당시) 영어로 출판된 책들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많이 보급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1쇄에 3만 권씩 팔리기도 했다”라고 썼다.
이 책이 세월의 풍화작용에도 살아남아 회개에 대한 고전 중의 고전으로 널리 읽히고, 21세기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영향력을 끼치는 까닭은 경건한 삶을 바탕으로 한 구령의 열정과 무엇보다도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에 주추를 튼튼히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24,25)
규장 편집국장 김응국 목사
[ 프롤로그 ]
하나님께 속히 돌아오라!
사랑하는 자여, 나는 당신에게 빚진 자임을 기꺼이 인정한다. 나는 하나님 집의 선한 청지기로서 모든 사람에게 각각의 몫을 챙겨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의사는 치료하기 힘든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가장 관심을 쏟는 법이고, 아버지는 죽어가는 자식에게 가장 연민을 느끼는 법이다.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회개하지 못한 영혼들에게 연민의 정을 더 느껴야 한다. 그리고 불속에서 타고 있는 나무를 꺼내듯 그들을 죄악에서 건져내기 위해 즉시 행동에 나서야 한다(유 23절). 그래서 나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그들을 불속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눈물로 글을 쓰면서 한 문장 한 문장 호소할 것이다. 내 피를 잉크 삼아서라도 글을 쓰겠다. 무릎 꿇고 애원하겠다. 그들이 내 말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그보다 감사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달음질하는 이유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회개하지 않는 자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 기도하고 연구했다. 이제 회개를 거부하는 자를 진심으로 하나님께 인도하고 싶다. 내가 얼마나 더 애원해야 돌이키겠는가?
“오, 주님! 저는 이 일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부족합니다. 제가 무엇으로 리워야단(사 27:1)의 비늘을 뚫고, 무엇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령을 녹일 수 있겠습니까? 제가 무덤에 찾아가서 그가 듣고 순종하여 무덤에서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까? 바위에게 연설해야 합니까? 산에게 열변을 토해야 합니까? 논리로 그를 설득하여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합니까?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보게 만들어야 합니까? 앞을 못 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했다는 말은 창세 이래 듣지 못했습니다(요 9:32). 그러나 주님, 주님은 죄인의 마음속으로 뚫고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림잡아 활을 쏘지만 주님은 갑옷의 이음매 사이로 화살이 꽂히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죄인의 죄를 멸하고 그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아멘.”
중생(重生)의 좁은 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천국에 이를 수 없다. 거룩함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히 12:14). 그러므로 이제 당신을 주께 바쳐라. 그분을 찾겠다고 결단하라. 주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집에 모셔라.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시 2:12). 주님의 긍휼의 품에 안겨 그분의 홀(笏)을 붙들어 생명을 얻어라.
왜 죽으려고 하는가? 지금 나를 위해 당신에게 이렇게 간청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원할 뿐이다.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내가 얻으려고 달음질하는 상(賞)이다. 당신을 향한 내 영혼의 간절한 소망과 기도는 당신이 구원받는 것이다(롬 10:1).
영혼을 낚는 어부
나는 마음을 열고 당신의 깊은 고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에게 유식한 말을 하려고 변사(辯士)를 흉내 내지도 않을 것이고, 당신의 환심을 사려고 달콤한 말을 늘어놓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당신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도와 당신을 구원하라는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려는 것이다. 미사여구를 미끼로 당신의 칭찬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영혼을 낚으려는 것이다. 내 사명은 당신을 기쁘게 하는 데 있지 않고, 당신을 구원하는 데 있다. 그래서 당신의 변덕스럽고 잡다한 생각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당신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애당초 당신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다른 노래를 준비했을 것이고, 내 자신에게 설교하려는 것이라면 이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좀 더 부드러운 이야기를 가지고 당신 앞에 나타났을 것이고, 당신에게 팔베개를 해주면서 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만일 미가야가 아합 왕에게 항상 길(吉)한 일을 예언했다면 아합 왕이 그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왕상 22:8).
그러나 명심하라.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고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어 필경 화살이 간을 꿰뚫는 것 같은 창녀의 말보다 당장은 마음에 상처를 주는 친구의 말이 훨씬 낫다(잠 6:26, 7:21-23).
만일 우는 아기를 달래려고 한다면 아기에게 기분 좋은 노래를 들려주거나 살살 다독여 재우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 아기가 불속에 떨어졌다면 나는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노래를 들려주거나 과자를 던져주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회개하게 하려는 내 노력이 실패로 끝난다면 당신은 지옥을 면할 수 없다.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는 결심을 이끌어내려는 내 시도가 물거품이 된다면, 당신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회개가 없으면 구원도 없다! 당신에게는 내 말에 따르거나 영원히 비참한 상태에 머무르는 양자택일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오, 주님! 제가 쓸 돌들을 시내에서 골라주십시오. 저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삼상 17:40,45). 어리지만 골리앗을 대적하여 나아갔던 다윗처럼 저는 앞으로 전진합니다. 그러나 저는 혈(血)과 육(肉)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에 맞서 싸웁니다(엡 6:12).
오늘 블레셋 족속을 치소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자를 멸하시고, 그들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풀어주소서. 오, 주여! 제가 할 말을 골라주소서. 제가 사용할 무기를 골라주소서. 제가 자루에 손을 넣어 돌을 꺼내 투석기로 날려 보낼 때 그것이 표적에 정확히 맞게 하소서. 그 돌이 완전히 박히게 하소서. 그러나 이마에 박히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죄인의 마음에 박혀서 다소의 사울처럼 땅에 엎드러지게 하소서(행 9:4).”
무엇이 회개인가?
혹시 당신은 내가 말하는 회개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회개하라고 하면 나는 헛수고를 하는 셈이니 회개에 대해 알려주겠다.
당신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회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겠다. 혹시 당신이 이미 회개했다는 헛된 자만에 빠져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회개하지 않은 자의 특징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또한 당신이 아무런 영적 갈등을 느끼지 않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치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잠을 자는 것 같은 상태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하여 나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비참함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지금 당신은 빠져나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겠다. 끝으로 모든 사람들을 소생시키기 위해 회개의 동기에 대해서도 말하겠다.
조셉 얼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