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전집에 포함된 주석서들은 처음부터 [WBC 성경주석]의 일환으로 쓰여진 책들이다. 오늘날 성경 주석 분야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는 몇몇 전집들이 영어 이외의 언어로 쓰여진 저작들을 영어로 번역한 것에 비하여, 본 성경주석은 오로지 처음부터 영어로 쓰여진 책들만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본 전집의 주석가들은 성경 원문을 각자 나름대로 영어로 번역한 다음, 그 번역된 성경 본문을 자신들의 주해와 주석의 바탕으로 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나아가서 본 전집이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그 내용이 어디까지나 성경적인 언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각계 각층의 독자들 - 공부하는 학생들, 현재 목회사역에 종사하고 있는 교역자들 그리고 이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 현재 목회사역에 종사하고 있는 교역자들 그리고 이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이나 교수들 - 이 성경에 대한 신학적 이래를 학문적이면서도 실제적으로 쌓아 나갈 수 있고, 또 그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편성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Word Biblical Commentary는 복음주의 비평학자들 가운데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책을 집필한 42명의 필자들은 거룩한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확고한 권위를 인정하면서 역사, 본문, 고고학적인 모든 분야의 주요 발견들의 증거를 면밀히 심사하여 제공하고 있다.
[본문 28-31, '서론' 중에서]
관점(Point of View)
하나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관점을 지닐 수가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관점은 화자의 관점이다. 마가복음은 "전지전능한 관점"을 지닌 익명의 제3자에 의해 말해진다. 화자는 기록된 모든 사건들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인물들의 사상, 감정, 느낌, 의도 등을 꿰뚫어본다. 이러한 지식은 화자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세계에 침입하여 어떤 장면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부가적인 주석이나 견해를 첨가하게 만들다.(예를 들면, 6:52)
본서의 화자는 등장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그 어떤 등장인물들도 자신을 초월하는 일들에 대한 증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 화자는 시종일관 동일한 어조를 취하며, 자신은 그 사건이나 말에 초연한 듯한 자세를 취한다.
동시에 화자는 예수의 시험받으심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그리고 제자들을 향한 개인적인 가르침 등과 같은 사건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 중심 사건이나 인물들의 마음 속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이런 방식으로 "전지전능한" 화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신뢰하도록 만들고, 자신의 설명을 바른 것으로 받아들이게 요구한다.
한 이야기의 관점은 많은 측면들을 내포한다. 그것 중의 하나는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 적절하고 부적절한 것에 관한 일련의 가치판단을 보여 주는 "관념론적인" 혹은 "가치 판단적" 요소 중의 하나다. 많은 인물들이 언급되고 있는 마가복음의 기사에 각각의 인물들은 나름대로 판단의 관점을 지닌다.
그리고 화자는 다른 모든 관점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예수의 관점을 자신의 관점과 시종일관 동일시한다. 킹스버리는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의 평가의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과 동일하며, 이런 사실은 화자의 구약성경의 이용(예를 들면, 1:1-2)과 하나님의 음성,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천명하고 있는 예수의 관심(예를 들면, 10:18; 10:40; 14:36)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기사에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관점이 있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마가복음의 구성에서 상당히 갈등을 형성시킨다. 이 반대되는 두 가지 관점을 마가복음의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면(8:33), (a)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과 (b)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말에 신뢰성과 권위를 주기 위해 자신의 관점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화자는 자기 자신과 사건들과 등장 인물들과 관련하여 예수의 관점과 일치시키고 있고, 또한 예수께서도 그 자신과 사건들과 등장 인물들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관점과 일치시키고 있기 때문에, 화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규범이 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1:1)은 "하나님의 복음"(1:14) 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는 전지한 화자를 마가복음의 실제 저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마가복음에서는 1인칭적 증언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화자는 종종 복음서 저자의 육체적, 시간적, 개인적 제약을 벗어나 있다. 그러나 본서는 화자와 복음서의 저자를 다함께 지칭하는 말일 "마가" 혹은 "복음서 기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른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마가라고 불리어진 복음서 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한 문학적 도구로서 전지한 화자를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화자와 저자는 동일시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화자는 복음서의 저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구성(Plot)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성은 있지만 마가복음의 구성은 1:1의 표제에서 독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또는 "복된 소식"이며, 마가복음의 경우 모든 사건 가운데서 중시되고 있는 주제다.
구성은 예수께서 "복음"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된 소식"을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선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복된 소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통치가 임박하였고, 시기적으로 볼 때 약속된 것들이 열매를 맺게 되었으며, 모든 것은 회개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에 복종할 것(1:14-15)을 선언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믿음 안에서 응답하여 "하나님의 일을 생각"(8:33) 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구성 혹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사건들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갈등을 수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예수와 악마 사이의 갈등(예를 들면,1:12-13, 21-27), 예수와 로마 당국자들 사이의 갈등(15:2-15), 예수와 유대 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예를 들면, 2:1-3:6; 12:13-44), 예수와 제자들 사이의 갈등(예를 들면 4:40: 8:14-21;14:26-31), 심지어는 예수와 하나님 사이의 갈등(예를 들면 14:35-36, 참조 15:34)을 발견한다.
한편으로 예수께서는 사탄의 유혹에 맞서서 음모를 분쇄함으로써, 죄인들을 용서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일으키심으로써, 굶주린 자를 먹이고, 자연의 세력을 복종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슬픔 그 자체를 물리침으로써 이런 갈등을 극복하고 있다.
또 한편 예수께서는 자발적으로 적대자들의 치명적인 음모를 차단시키시고 아버지가 그에게 준 "잔"을 마심으로써 세례 요한에 의해 먼저 나타나고(1:14; 6:17-29; 9:11-13), 그의 적대자들에 의해 도모된 역할(예를 들면, 3:6; 11:18;12:12; 14:10; 15:15)을 아버지의 뜻의 일부분으로서 받아들이셨다(참조 12:1-12; 14:36)
"복음서"에서 갈등이 증대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예수의 신분에 관한 문제다. 이 문제는 기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례 받으실 때에 들려온 하나님의 소리에 의해 뒷받침되고(1:11),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의 울부짖음에 의해 확증된다.(1:25, 34; 3:11-12; 5:7) 또한 변화산상에서 들려온 하늘의 소리(9:7)에 의해 강화되고, 대제사장 앞에서 고백되어지며(14:61-62), 로마 백부장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선언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신분은 1:1에서 독자들에게 명확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예수의 신분에 관한 마귀의 인식과는 별도로, 예수의 신분의 완전한 의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에 비로소 등장 인물들의 입으로 고백된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예수 스스로가 자기에 대해서 인자라는 칭호만을 사용하기를 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악마와 병 고침받은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내린 침묵 명령에 의해서 더욱 증대된다.
한편으로 예수의 신분의 문제는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의 고향 사람들과 가족들의 거절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예수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며 수행자들인 제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예수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의해서 증대된다.
참으로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구성의 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예수의 부름을 받고 교제를 나누던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받은 자들"(4:11)로서, 즉 "하나님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하는 사람들로서 "회개와 믿음"안에서 예수께 응답하고 있다.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예수의 사역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았다. 심지어 몇몇 제자들은 그러한 사역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반복적으로 예수께서 누구이신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제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예수의 신분의 의미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세례와 죽음 사이의 특정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갈릴리에서부터(1:16-7:23) 갈릴리 북동 지역으로 이동하고(7:24-9:29; 참조 9:30-52), 요단강을 건너(10:1-52) 예루살렘에 도달하는 (11:1-16:8) 장소의 이동이 정확한 여행 경로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채로 전개된다.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이르기까지의 빈틈없는 구성과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에 대한 단 한 번의 언급은, 이 모든 사건들이 1년 이내에 발생했다는 인상은 준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저자가 예수의 사역의 영역에 포함되는 짧은 연대기적인 기사를 제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추정은 그리스-로마의 전기 문학의 형식에서나 제4복음서의 구성과 내용의 관점에서 볼 때 반드시 사실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비록 복음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연관성 있는 기사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연재기의 범위나 혹은 이야기의 완결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이야기의 연대기와 장소의 견지에서 볼 때 저자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해서는 "시기와 장소"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