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끔거리는 아픔을 밀어내지 않고
안고, 보듬고, 싸우고, 사랑하며 지낸 하루들!
아픈 아내, 사춘기 자녀, 그리고 이웃과 함께 만드는 ‘엄빠’ 김병년 목사의 일상다반사!
할 수만 있다면 피해가고 싶은 단어 ‘고통’, 그 고통을 품에 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김병년 목사의 일상을 담은 책이다. 《난 당신이 좋아》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자는 2011년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며 1만 명의 친구들과 소통하는 중이다. 셋째 아이를 낳고 사흘 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아내, 올해 고등학생이 된 큰딸 ‘춘녀’, 붕어빵 큰아들 ‘춘돌’(춘녀와 춘돌은 저자가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녀를 부르는 별명이다), 그리고 엄마 품에 한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아홉 살이 된 막내의 근황은 SNS 상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이야기가 되었다.
지난 3년간 페이스북을 통해 저자가 정성스레 올린 글을 정리해 묶은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김병년 목사의 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세 가지는 ‘가족’과 ‘일상’과 ‘신앙’이다. 아내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춘녀의 아침밥을 챙기는 일도, 막내를 학교에 보내는 일도, 그러면서 목회 사역을 하는 일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 저자에게 가족과 일상과 신앙은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의 삶 자체가 된 이야기를, 저자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찍은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수록했다(사진: 홍진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는 것은 ‘함께함의 중요성’이다. 말도 하지 못하고 손짓 하나 할 수 없는 아내 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을 삶과 글로 표현한다. 자녀와 가족, 섬기고 있는 교회, 넌크리스천을 포함한 이웃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소중한 그의 가치관이다. 그래서 책의 구성 역시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함께함’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유명인의 추천사를 받기보다 저자의 글을 아끼고 실제로 페북을 통해 소통했던 페친들의 글을 실었다. 또 ‘아빠, 우린 왜 이렇게 행복하지’의 표지 제목은 저자의 막내딸 김윤지가 직접 크레파스로 쓴 글씨로 꾸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만드는 데 동참한 것을 알리고자 했다.
# 뾰족한 아픔에서 시작된 반짝이는 이야기
윤지가 저자에게 “아빠, 우리는 가난한데 왜 이렇게 행복한 걸까?”라고 묻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난’은 ‘돈이 없는 것’으로, ‘행복’은 ‘우리가 기뻐하는 것’으로 명쾌하게 정의를 내린 윤지는 엄마 젖 한번 물어보지 못하고 아홉 살이 된 저자의 막내딸이다.
그의 일상은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지라도 누릴 행복이 얼마나 많은지를 가르친다.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아빠 김병년이지만, ‘노원상공회의소’의 넌크리스천들과 함께 새벽마다 축구도 하고, 시간을 쪼개 세 자녀와 따로 밖에서 만나 데이트도 한다. 얼마 전에는 춘녀와 춘녀의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울 때 울고, 화낼 때 화내고, 웃을 땐 활짝 웃는 저자의 감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책은 ‘가난’이, ‘육체의 질병’이, ‘고통’이 행복의 본질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말한다. 남들과 비교하느라 이미 주어진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르쳐준다.
# 나의 아픔이 너의 아픔을 위로한다
아내의 간병과 자녀 양육과 살림살이와 목회를 병행하는 저자의 별명은 ‘엄빠’이다.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모두 한다고 해서 자녀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저자 특유의 재치가 섞인 글에 참 다양한 독자들이 울고 웃는다. 그래서 저자의 페이스북은 비단 저자의 글로만 채워지는 공간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페친’들이 그의 글에 수많은 댓글을 단다. 댓글은 댓글대로 사연이 깊다. 우선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자의 글에 위로를 받는다. 어린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 장애 가족을 둔 사람들, 병으로 고통 받는 자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저자의 글을 읽고 스스로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려다 돌아선 사람도 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도 엄빠 김병년의 글에 무수히 공감한다. 화려한 자녀교육 비법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녀들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때론 투정 부리는 모습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댓글로 자녀 교육법을 주고받기도 한다. 때론 거칠고 서툰 문체여도 그의 아픔에서 비롯한 진정성이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수요예배를 마친 어느 날, 가족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막내 윤지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 우린 가난한데 왜 이렇게 행복한 거야?”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의 입에서 ‘가난’과 ‘행복’이란 단어가 동시에 터져 나와서. 사실 내 상황을 알거나 글로 읽은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 꼬마 아이의 눈에 비친 내 인생은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삶이었다. (14쪽)
“윤지야, 네가 새벽에 엄마 가래 빼줬니?”
“응”
“석션기 사용하는 건 어떻게 알았니? 언니가 가르쳐줬어?”
“아니, 그냥 아빠 하는 거 보고 알았어.”
태어난 지 사흘 뒤로는, 지금껏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녀석이 이제 꼼짝 않고 누운 엄마의 가래를 빼준다. 엄마의 돌봄을 받아보지 못한 어린 딸이 엄마를 돌본다.(37쪽)
집사님의 축구 철학은 축구 잘 못하는 사람들도 나와서 함께 공을 차는 팀을 만드는 것이다. 말이 쉽지 과연 그게 될까, 축구를 못하는 축구팀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무슨 재미로 경기를 하겠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꾹 누르고 전적으로 그분께 축구팀을 맡겼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집사님의 철학이 맞았다. 집사님의 철학대로 축구팀을 운영해보니 시합에는 져도 선수가 남았다. 지금은 모두가 즐겁게 공을 찬다. (122쪽)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김윤영 학생의 아버지입니다.”
“아, 윤영이 아버님이세요? 이런 은혜를 누릴 줄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사경회를 인도했던 교회의 성도님이셨다. 사경회 마지막 날 우리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거기 사진 속 큰딸이 바로 당신 반 제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은혜를 예비해놓으실 때가 있다. 춘녀 선생님과 학교를 떠올릴수록 마음이 몹시 가볍고 즐겁다. 아빠의 이 즐거움이 춘녀 학교생활의 즐거움이 되길 바란다.(148쪽)
혹여 아내가 낫더라도 간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응답 받지 못한, 오래 기도해온 신실한 성도들에게 나 혼자 나았다고, 당신도 이렇게 해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끝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그들에게 내게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들을 정죄하는 것 같아서다. 나에게 일어난 기적을 일반화하면 아픔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더 큰 쓰라림을 준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나으면 오히려 입을 닫고 침묵하리라, 간증은 아내가 낫지 않은 동안만 하리라, 굳게 결심했다.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며.(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