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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복음 - 존파이퍼 [출판사:두란노]

차별없는복음 - 존파이퍼

팀 켈러, 김인중, 송태근, 양희송, 이재환, 유해근, 조성돈, 지형은 추천!

인종차별과 십자가 복음에 대한 탁월하고도 위험한 책!
존 파이퍼의 간증과 고백, 신학과 열정이 담겨 있어, 
우리 가슴에 열망을 불러일으키게 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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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는 “나는 인종차별주의자였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글로벌 시대 다문화 사회, 우리가 믿는 복음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당신은 차별없는 복음의 관점 위에 서 있는가?

“우리는 예수의 혈통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올해 (2013년 3월) 부활절 예배를 끝으로 지난 33년 동안 시무했던 베들레헴 침례교회 (Bethlehem Baptist Church, 미니애폴리스 소재)를 사임했다. 그는 목회 말년에, 아직도 우리 안에 극심한 ‘차별’의 문제가 있으며, 복음만이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고 이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눈다. 자신이 바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인종차별에 냉담했다는 것이다. 신학을 배우고, 독일 유학 시절 유태인 수용소를 다녀오면서 비로소 차별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 차별의 문제가 21세기 현대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성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어떤 철학이나 신념이나 강연도 뿌리 깊은 인종 간, 빈부 간, 지역 간의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유일한 희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제시한다.
그가 시무한 베들레헴침례교회는 인종 간의 화합을 추구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했고, 이런 구체적인 방법 역시 책에 담았다. 뿐만 아니라 존 파이퍼는 직접 흑인 소녀 탈리사를 입양하고, 빈민가에서 사는 등 ‘차별의 문제와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신념을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고 있다.
존 파이퍼는 이 책 서문에서 차별이 그냥 상상이나 망상이 아니라 현실에 빚어지고 있는 일임을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인용해서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몰려오는 다문화 사회에서, 또 사회 안의 빈부, 학벌, 지역의 차별의 문제를 가
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이 책은 큰 도전과 진정한 해결책을 안겨줄 것이다.



***(서문에서 발췌)
인종차별의 독화살에 맞아 보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기다리라”는 말이 쉽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악한 폭도가 당신들의 부모를 마음대로 죽이고 동기간을 기분 내키는 대로 익사시키는 것을 보았다면, 증오에 찬 경찰관들이 당신들의 흑인 형제자매를 욕하고 발길질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을 보았다면, 2천만 흑인 형제의 대다수가 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가난이라는 답답한 우리에 갇혀 질식당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당신들도 여섯 살배기 딸에게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놀이공원에 갈 수 없는 이유를 대지 못해 졸지에 혀가 굳고 말더듬이가 된다면, 흑인이라 놀이공원에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딸의 눈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을 본다면, 그 어린 마음에 벌써부터 열등감이라는 불길한 먹구름이 끼는 것을 본다면, 무의식중에 백인에 대한 원한이 싹터 점점 성격이 비뚤어지는 모습을 본다면….
당신들도 다섯 살배기 아들한테서 “아빠, 백인들은 왜 이렇게 흑인들을 못살게 굴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을 쥐어짜내야 한다면, 먼 길을 이동할 때도 흑인을 받아 주는 모텔이 없어 밤마다 자동차 안에서 쭈그리고 자야 한다면, ‘백인용’과 ‘유색인용’이라는 지긋지긋한 표지판에 날마다 굴욕감을 느껴야 한다면, 이름 대신 ‘껌둥이’로 불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하대를 당해야 한다면, 당신들의 아내와 어머니가 결코 ‘부인’이라는 존칭을 듣지 못한다면….

킹은 또 자신이 극단주의자라는 비난에 이렇게 응수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고, 너희를 악하게 이용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신 예수는 사랑의 극단주의자가 아니었습니까?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한 아모스는 정의의 극단주의자가 아니었습니까?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한 바울은 기독교 복음의 극단주의자가 아니었습니까?
“저는 여기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도 극단주의자가 아니었습니까? “내 양심을 팔아먹느니 차라리 죽는 날까지 감옥에 있겠다”고 한 존 번연(John Bunyan)도 그렇지 않습니까? “절반의 노예, 절반의 자유로는 이 나라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이 자명한 진리를 천명한다”고 한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가 극단주의자가 될 것인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부류의 극단주의자가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증오의 극단주의자와 사랑의 극단주의자, 그중 어느 쪽이 되겠습니까?

끝으로 킹은 교회를 향하여 강력하게 호소한다. 1963년 그때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교회가 아주 강했던 때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신앙 때문에 고난 받기에 합당하게 여겨짐을 기뻐했습니다. 그때의 교회는 그저 여론의 뜻과 기준을 반사하는 온도계가 아니라 사회 규범을 변화시키는 온도조절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에는 이전과 달리 하나님의 심판이 머물러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희생 정신을 되찾지 않는다면, 오늘의 교회는 진정성과 수많은 무리의 충절을 잃은 채 20세기와 무관한 무의미한 사교 집단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이것이 1963년 버밍햄의 감옥에서 울려 나온 마틴 루터 킹의 예언적 목소리였다.

 

  • 역자 윤종석
  • 저자 존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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