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지서의 첫 번째 책 이사야서. 민족의 최전성기를 지나 역사의 내리막길로 치닫던 시대, 공의와 사랑을 저버리고 종교적 제의에 몰두하며,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세를 의지하던 유대 백성에게 선지자 이사야가 목숨을 걸고 전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이었는가? 헛된 종교 행위에 빠진 줄도 모르고 복 받기를 기대하던 이들에게 내리는 통렬한 경고, 그리고 비견할 수 없는 궁극적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욕망과 두려움, 율법주의와 기복신앙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 오늘의 크리스천에게 광활한 자유, 펄떡이는 생명, 풍성한 삶을 선사하는 옛 선지자의 음성을 듣는다!
▒ 출판사 리뷰
CBS 〈성서학당〉의 명강사로, 복음의 메시지를 알기 쉽게 전달하면서 자유롭고도 흔들림 없는 삶의 길을 제시해온 신우인 목사의 이사야서 강해 설교집. 2010년과 2011년에 포이에마예수교회에서 행한 설교와 2011년 7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방영된 CBS 〈성서학당〉의 강연 내용을 모두 36강으로 정리해 엮었다.
이사야서는 구약에서 대표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는 책이면서, 심판에 대한 경고와 회복의 약속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선연히 새겨져 있는 책이다. 때문에 머리말의 말처럼 “이사야서를 바로 이해하면, 현재 나를 억압하고 내 눈을 멀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 맹목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우리들에게 그토록 주기를 원하셨던 자유와 은혜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향유하며 제대로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이전의 책 〈하늘 이야기〉 시리즈(모세오경 강해), 《예수의 첫 수업》(산상수훈 강해)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저자는 어려운 성경 구절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적절한 예를 곁들여 해설하려는 데 온힘을 쏟는다. 덕분에 읽는 이는 욕망과 두려움, 율법주의와 기복신앙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 자신에게 2,7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광활한 자유, 펄떡이는 생명, 풍성한 삶을 선사하는 옛 선지자의 음성을 듣게 된다.
■ 지워지지 않는 지문 같은 하나님의 사랑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 회당에 들어가 친히 두루마리를 펼쳐 읽은 말씀으로서 ‘메시아 사명 선언문’이자 출사표라고 할 수 있는 이 본문은 다름 아닌 이사야서의 한 구절(사 61:1)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에 관한 묘사, 그리고 ‘임마누엘’의 약속(사 7:14) 등 이사야서는 비유적으로 말해 '예수님의 지문', 곧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이 담긴 책이다. 한편, 1947년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기원전 100년경의 이사야서 두루마리에 당시 이를 읽던 사람들의 지문이 남아 있던 것을 보면, 예수께서 펼쳐 읽으신 이사야서 두루마리에도 실제로 예수님의 지문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유적으로도 문자적으로도, 이사야서는 예수님의 지문이 찍힌 책이다. 물론 이사야서에 찍힌 예수님의 지문은 그 책을 읽는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지게 된다.
■ 그런 종교적 행위는 던져버려라
이사야서가 기록된 시기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이 통치하던 시대로, 민족의 최전성기를 지나 역사의 내리막길로 치닫던 때다. 유다 백성은 안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으며, 외세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보다는 이웃 나라를 의지했다. 저자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당시 유다 백성이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길 소홀히 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종교 행위가 넘쳐났다는 점을 지적한다. 열심히 제사를 드리고 성전을 드나들었지만, 본질을 외면한 채 맹목적으로 종교 행위에 몰두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한국 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다. 십일조, 주일성수, 새벽기도에, 소위 ‘일천번제’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열심은 가득하지만, 과연 그 안에 하나님 사랑과 공의의 실천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질타를 외면한 남왕국 유다는 끝내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한국 교회는 이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과연 무엇에 힘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 책은 강하게 요구한다. 본질을 호도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껄끄럽겠지만, 종교 행위에 지친 이들에게는 강력한 자유의 메시지이다.
■ 이사야서 독서의 길잡이
대선지서의 맨 앞에 자리한 이사야서는 그 분량에서부터 다른 선지서를 압도하고, 이스라엘과 이웃 나라들에 대한 심판과 구원,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에 대한 선포,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하나님나라의 비전이 담긴 매우 중요한 책이다. 하지만 각 장이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고, 현실의 이야기가 미래의 환상, 경고와 섞여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과연 이것이 선지자 자신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 반어법인지 문자 그대로 새겨야 하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대목도 있어 잘못 이해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이사야서를 읽을 때는 적절한 안내자가 필요하다. 저자는 본문을 이해하는 꼭 필요한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복잡한 분석은 지양하고 핵심을 추려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깊은 뜻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간단명료하다”는 저자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두꺼운 주석서는 버거운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이사야서 독서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기독교의 예언은 ‘내다볼 예(豫)’가 아니라, ‘맡길 예(預)’자를 쓰는 예언(預言)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예언(預言)은 신탁(神託)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패망의 길을 가고 있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그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_12-13쪽
유대교 랍비들은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된 이유를 “율법에 따라서 살았지만, 율법의 요구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따라 산다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규칙에 따라 행하는 종교 행위를 뜻합니다. 율법의 요구를 넘어선다는 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_24쪽
수피교의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시장에 새로 문을 연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가게 주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무엇을 파느냐고 묻자, 하나님은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판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행복과 지혜를 주시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세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 가게에서는 열매는 팔지 않는다. 오직 씨앗만 팔지.” _50쪽
예언자들이 전하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지 않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들의 생각은 판이합니다. 하나님의 그 생각을 전하는 예언자들의 말은 통렬한 공격입니다. 교회에 다니므로 나는 안전하리라는 거짓 평안의 배에 구멍을 내어 파선시키는 것이며, 책임 회피와 자기 합리화의 가면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이며, 참 믿음을 회복하라는 강력한 촉구입니다. 과연 당신은 생명의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를 묻는 준엄한 물음표입니다. _79쪽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잘못은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길인 기독교를 가장 오래되고 진부한 종교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전도와 헌금,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해서 복 받으라는 그런 기복적인 신앙과 다를 바 없는 싸구려 종교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_91쪽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승리와 성공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부자가 되어 엉터리로 하나님을 섬기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잃더라도 하나님만을 제대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 점이 결정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임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혼이 날까 아양 떨며 눈도장 찍으러 올 거면 차라리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심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께서 진심이 없는 제사, 마지못해 드리는 예배를 어찌 기뻐하시겠습니까? _115쪽
‘고아 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돌봐주는 부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어린 몸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뭐든 의심부터 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집착합니다. 생각이 양극단으로 치닫습니다. 당연히 자아가 분열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고아 의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마련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착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늘 보좌를 움직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그런데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잘못하여 벌을 받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더욱 열심히 종교 생활에 매진합니다. 그런데도 소원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속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_180쪽
신앙인의 삶은 ‘수동적 능동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살고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가야 합니다. _223쪽
생존, 즉 먹고살기 위해 땀 흘리는 일은 존엄한 것입니다. 숭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이 길을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그 길을 간다면, 아무리 화려한 길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로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길이 아니면 너무나 많은 위험과 유혹과 함정과 올무가 있고, 헤어 나올 수 없는 파멸이 있습니다. _247-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