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중에서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부끄러움 한 권을 다시 냅니다. 이 에세이의 핵심은 ‘화해’입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저는 이 화해라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작은 힘이지만 전력을 기울이며 전국을 다녔습니다. 화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힘을 천 배로 늘리는 인간의 기적입니다. 우리 서로 그런 마음의 각오를 표현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고, 바로 앞분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면 어떨까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입니다.
가족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 아닐까요. 가족을 사랑할 때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았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을 우리는 뜨겁게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배웠습니다.
공동체에는 함께하는 미덕을 갖추지 않고 동행할 순 없을 것입니다. 화해는 동행의 또 다른 말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하는 분량이 곧 행복 분량’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사용하지 않는 힘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급할 때 하나가 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그 새로운 힘을 이끌어 주는 동력을 우리 사회의 에너지로 재발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_ 신달자
어쩌면 우린 몸이 가지고 있는 위장의 배고픔이 아니라 마음이 고픈 것인지 모릅니다. 후배들과 잘도 먹고, 웃고, 소리치며 돌아가는 그 시간에 저는 왜 포장마차의 우동을 바라보았을까요?
제게 사진을 건네주러 왔던 그 남자는 왜 큰일도 없는데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했을까요. 왜 K는 잔뜩 부른 배 속에 우동을 붓고, 후배 미옥이는 왜 우리 동네 포장마차를 그리워하는 걸까요. 아마도 그것은 생리적 허기가 아닌 또 다른 무엇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어서일 겁니다. 그 마음의 허기를 알지 못한 채 위장 채우는 것만으로 해결하려 한 얄팍한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 몸에 유령 위장이라는 것이 있어, 늘 ‘고프다’는 뇌의 지령을 내리게 해 우리를 고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감정적 모순은 존재하는데, 이것을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는 ‘정서적 허기’라고 명명합니다. (중략)
그렇다면 이 정서적 허기를 내쫓는 방법은 없을까요? 배고픔의 허방에 끌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중략)
사는 일은 다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재미라는 것을 ‘아침 우유’처럼 배달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는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신문을 펼쳐 관심 있는 기사나 좋은 기사를 스크랩하거나 다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관심사를 모으다 보면 그것이 좋은 스승이 되기도,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돈만이 유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빠의 관심사가 자녀들에겐 중요한 유산이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배불리 먹고도 괜스레 포장마차 우동을 넘보지 않아도 되고, 야식으로 라면을 끓이지 않아도 됩니다. 쓸쓸하다 말하지 않아도 되고 인생이 왜 이렇게 허전한 거냐며 하늘에 대고 따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중략)
그래도 허전하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 허기를 서로가 이해합시다. 생명에는 일정 정도 그런 허기가 필요합니다. 그 허기는 우리와 함께 사는 식구일 뿐입니다. 그 감정적 불청객 하나 때문에 우리가 망가져서야 되겠습니까.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가정이야말로 이런 크고 작은 노력에 의해 성숙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이해가 뒷받침됐을 때, 남성들의 광산 같은 에너지도 분출되지 않을까요?
_ <정서적 허기를 아십니까?> 중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 나이 마흔에 가까웠을 때에야 어머니가 새벽녘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던 그때가 바로 어머니의 마흔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남편이 그립고 남자가 그립고 혼자인 것이 뼈아프게 외로웠던 여자였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습니다.
누구보다 딸이 많았던 어머니였지만 누구도 어머니가 여자라는 사실을 기억한 딸들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밥하고 빨래하고, 우리 딸들을 향해 지독한 욕설을 퍼 붓는 그런 분이 어머니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며 자식을 사랑하는 그런 평범한 어머니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도 여자로서 항의하고 싶고, 여자로서 위로받고 싶고,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중략)
어머니란 존재는 늘 그렇게 외로워야만 하는 숙명일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것이 딸이라 할지라도 너무 내면적인 이야기는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숙명이 아니라 인간이므로 누구나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이 설사 자식이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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