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회개 (True and False Repentance) - 찰스 G. 피니 [출판사:은성]
구원에 이르는 회개 (True and False Repentance) - 찰스 G. 피니
구원에 이르는 회개 (True and False Repentance) - 찰스 G. 피니
19세기 신학자이자 명설교가 찰스 피니의 회개를 촉구하는 명설교
회개를 촉구하는 19세기를 살았던 찰스 피니의 메시지는 오늘날의 교회와 세상에게도 적용되고 필요하다.
외견상 자기 파괴와 자기 강화에 골몰하고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많은 메시지들이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들인 데 반해, 피니의 메시지들은 비타협적이며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내용들이다.
새로운 형태로 출간된 이 메시지들이 갈급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함으로써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계시해 주고, 불신하는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참된 회개를 하면 죄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달리 하게 되며, 그에 따라서 죄를 향한 감정의 변화도 일으킨다.
감정은 사고(思考)의 소산이다. 죄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게 되고, 또 이러한 견해의 변화에 부응하여 죄에 대한 올바른 감정을 갖게 될 때 진정으로 참다운 회개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이 올바른 견해이다. 이 때 가지게 되는 견해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갖고 계시는 견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근심, 즉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과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을 때만 그 심령의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를 수 있다.
죄의 본질에 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참으로 회개한 자가 가지는 죄에 대한 견해는 회개하지 않은 자와는 아주 다르다. 진정 회개한 자에게 있어서 죄는 호감이 가고 매혹적인 것처럼 보이기는커녕,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즉 자신이 회개하기 전에 그러한 것을 바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놀라게 된다. 물론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도 죄가 자신을 망하게 하리라는 것, 곧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자기들을 벌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죄는 본래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죄를 사랑하며 죄를 맛본다. 그들은 죄로 인한 결과가 행복하게 끝날 수만 있다면, 결코 죄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회개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기의 죄악된 행동을 철저히 증오한다. 그는 회개하기 전의 일들을 회고하며 이렇게 외친다. “내 안에 이런 것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나는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사람이다.”
죄의 특성에 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죄인들은 하나님께서 왜 끔찍한 징벌로 죄를 다스리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죄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왜 하나님께서 죄를 영원한 징벌을 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기시고, 그러한 견해 안에서 죄를 보시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달을 때에만 그들은 죄를 달리 보게 되며, 그리스도인과 동일한 관점에서 죄를 대하게 된다. 이렇게 변화될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감정의 변화를 갖게 된다. 많은 죄인들이 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고 있으며,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 견해를 따르지 않는다. 마귀들과 지옥의 악한 영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한다. 죄에 대한 견해의 변화는 참 회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항상 회개에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견해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우리 마음은 결코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회개 없는 견해의 변화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견해의 변화가 없는 참 회개는 있을 수 없다.
죄의 성향에 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죄인은 죄가 영원한 죽음을 받을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고도 이 점에 관한 생각이 완전히 변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견해가 변화되지 않고서 참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죄가 죄의 성향 안에서 영과 육, 그리고 현세와 영원 세계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 및 모든 사람들에게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우주의 아름답고 복된 모든 만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는 죄가 자기 자신 및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성향이 있다는 것과 보편적인 절제만이 유일한 치유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귀도 그렇게 알고 있다. 아마 우리 가운데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죄인들이 있을 것이다.
죄의 응보에 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회개라는 말에는 앞에서 제시된 견해들의 변화가 함축되어 있다. 이 말은 마음의 상태에 있어서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모든 견해들의 변화가 포함된다. 그것이 생명과 관계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부주의한 죄인에게는 죄의 응보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결여되어 있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죄가 영원한 죽음을 받아 마땅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믿지는 않는다. 그것을 믿는다면, 부주의한 죄인으로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죄는 영원히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미혹되어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각성하고 뉘우친 죄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치 않는 것처럼 이 사실도 의심치 않는다. 그는 죄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영원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참된 회개는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감정의 변화는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견해, 즉 죄의 본질, 죄와 하나님과의 관계, 죄의 성향, 그리고 죄의 응보 등과 관련이 있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은 죄를 가증하고 추악하며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죄를 혐오하고 죄를 미워한다. 사람들은 죄가 해롭고 혐오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죄를 사랑하고 원하고 집착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할 때에, 진심으로 죄를 미워하고 버릴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참 회개를 한 순간부터 과거에 자신이 사랑하던 행위들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스도인들이 때로 죄에 대해서 크게 애통해 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본질과 관련해서 죄를 볼 때는 혐오를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를 볼 때에는 눈물을 흘린다. 회개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애통해 하며 통회의 눈물로 회개하기를 원한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죄를 있는 그대로 느낀다. 어떤 사람에게 죄의 성향이 있음을 깨달으면, 그는 그것을 저지하여 그 사람을 죄에서 구하고 사망의 물결을 물리치려는 뜨거운 소망을 갖는다. 그 소망이 그의 심령을 불태운다. 그래서 그는 죄인을 죄의 끔찍한 성향에서 구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수고하며, 그 죄악의 불에서 전력을 다해 끌어내려 한다. 이런 일에 열중할 때,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버리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죽음의 독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처럼 큰 소리로 경고한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죄의 응보에 대해 똑똑히 알고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범죄하면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지적 확신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영원한 사망을 선고하시는 것이 지극히 옳고 정당하며 공의롭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를 정죄한 율법의 선고를 비난하기는 커녕,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하실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요, 은혜 중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는 죄인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하나님의 처사가 무정하고 가혹하며 불친절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자신이 지옥으로 보내지지 않는 것과 범죄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머지않아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지리라는 것에 대하여 크게 경탄한다. 그는 죄인들이 모두 구원받지는 못한다는 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다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고 놀란다.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야 할 죄인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지극히 큰 감사를 느끼게 된다.
참된 회개를 이룬다면 죄에 대한 견해와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하여 견해와 감정의 변화를 체험했을 때 그것을 의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문제에 있어서도 변화를 체험하면 그것을 의식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 안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옛 것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참된 회개를 이루면, 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사라진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죄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죄에 대한 두려움이나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피한다.
참 회개는 행동의 변화를 일으킨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는 것이다”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행동의 변화를 낳는다. 이와 동일한 원리로, 회개는 회개를 낳는다는 말이 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마음의 변화, 즉 회개는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며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생각해 볼 때, 자신이 진정으로 변화되어 과거에 탐닉했던 죄악을 다 버렸는가? 아직도 죄를 범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다. 제아무리 마음을 바꾸었다고 해도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즉 실제적인 개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한 회개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회개도 아니다.
회개가 참되고 순전할 때, 죄를 고백하며 동시에 범죄한 일에 대한 보상을 한다. 도둑이 회개했다고 해도 훔친 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한 그는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뉘우쳤을 수는 있지만, 회개한 것은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훔친 돈을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속이고 부당하게 취한 것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또는 어떤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서도 자신이 행한 나쁜 짓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참된 회개에 따라 성격과 행동이 영원히 변화된다. 성경말씀에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라고 기록된 바울 사도의 말은, 참된 회개란 아주 깊고 근본적인 것이어서 그것을 체험한 사람은 옛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는 회개이다. 회개가 너무나 철저해서 되돌아갈 필요가 없는 회개이다. 죄에 대한 사랑을 철저히 버린 상황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죄에 대한 견해와 감정들이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에 옛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진정으로 회개한 죄인은 결코 회개할 것이 없는 감정들을 구현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이다. 이러한 참된 회개는 천국에서의 안식에 이르는 그때까지 지속된다. 이러한 회개의 결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까닭은 그것이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