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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본 기독교의 신비주의-어춘수 [출판사:가이드포스트]

역사를 통해 본 기독교의 신비주의-어춘수

역사를 통해 본 기독교의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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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상승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기독교 신비주의 영성 길잡이

“위 디오니소스ㆍ베네딕트ㆍ버나드ㆍ프란체스코ㆍ에크하르트
길선주ㆍ김익두ㆍ이용도ㆍ최태용….”

기독교적 신비주의는 진정 무엇인가?
인간의 삶 가운데 과학이 중심을 자리한지 오래다. 첨단문명의 혜택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몹시도 불안해한다. 그리고 과학과 물질도 내면 깊숙한 곳의 만족은 채워줄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면서 강력한 신비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각종 점성술이나 예언술ㆍ신접술ㆍ복술에 현혹되는가 하면, 삶의 질을 추구한다는 명목 하에 기공ㆍ단전ㆍ초월명상ㆍ요가ㆍ초능력 등에 관심을 가지며 영적 근원을 자극받고 싶은 본능적 욕구를 해소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조류에 편승하여 한국 기독교 안에도 영성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세사상ㆍ윤회설ㆍ전쟁설ㆍ빙의론 등, 국적불명의 신비현상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민중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렇게 신학적으로 바르게 정립되지 않은 영성운동을 제어할 만한 장치나 각성은 전무한 현실이며, 이는 결국 기독교신앙을 왜곡 및 이질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본 책의 저자 어춘수 박사는 이러한 왜곡과 오류, 거짓된 것으로부터 한국 기독교 신비주의의 진실과 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필요를 절감하여 바람직한 신비주의 운동으로의 전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 저자는 서구 정통 기독교, 한국 전통종교, 한국 신종교, 한국 기독교, 한국 기독교계 신종교 등이 지닌 신비주의적 측면을 역사를 통해 면밀히 살핌으로 한국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평가한다. 더 나아가 한국 기독교 신비주의의 원천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의 신비를 삶과 영성을 통해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신비주의 영성의 올바른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껏 신비주의를 단편적이면서 분야별로 다룬 전문 저서가 나오긴 했지만 한국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을 종합적으로 다룬 저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기독교 신비주의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안내서가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신비주의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존재인 인간이 초월적이고 거룩한 신적 존재를 향하여 나아가는 운동을 통해, 최종적으로 그 초월적인 존재와 신비적으로 합일mystical union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비적 존재와의 합일’, 그리고 ‘초월적 세계로의 전이’라는 과정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의 논리다.
- p20-21 -

서구 정통 기독교 신비주의가 사랑ㆍ겸손ㆍ정화ㆍ조명ㆍ극기 등 이타적 노력을 통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합일을 염원한 데에 비해, 한국 신종교적 신비주의 성향은 그저 이기적으로 현세적 소원에 근거해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 기독교의 친 한국 신종교적 신비주의 성향을 제거해, 정통 서구 기독교가 지녔던 사랑의 합일 개념을 복원해내는 것이 중요한 신학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 p137 -

신비주의에서 신과 합일하려는 영혼의 열망은 어떤 상황ㆍ장소ㆍ교리ㆍ종교에도 뿌리를 내리지 않은 곳이 없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고자 했다. 중세는 도덕적 타락이 심했고, 영적으로 빈곤한 시대였다. 이때 많은 금욕적 고행주의자들과 탁발 수도회와 은둔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하나님과의 합일에 이르고자 고행과 금욕에 육체를 길들이려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노력했다.
- p257 -

성령충만이라는 온전한 연합을 통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방식과 성서적 세계관에 따라 생각하고, 하나님이 느끼는 방식대로 느끼며, 하나님이 하시고 싶어 하는 일을 할 때, 비로소 기독교 신비주의는 제 위치를 찾을 것이다.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계시론적 신비주의인 기독교적 신비주의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존재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안내를 받아, 그리스도가 보여 주는 신만을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이 성서적임을 늘 인지해야 한다.
- p259-260 -

  • 저자 어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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