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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유진 피터슨 [출판사:IVP]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유진 피터슨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Leap Over a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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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통찰이 가장 잘 드러난 대표작!
지난 10년간 10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의 수많은 저작 중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다. 피터슨에 따르면, 다윗은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서가 아닌, 삶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인물로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다윗 이야기는,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이는 어느 시대나 문화를 막론하고, 일상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유대가 ‘가능함’을 명확히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왜곡된 신앙관을 제 자리로 돌려 놓고자 하는 저자의 굳은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신앙과 삶이 분리된 현대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께 사로잡힌 이 다윗의 상상력이 어느 때보다 시급히 필요하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묵묵히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에게 반응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일 것이다.

[독자 대상]
- 삶과 신앙의 통합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
- 현세를 사는 영성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 일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특징]
- 국내 출간 10년간 10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온 베스트셀러
- 일상을 강조하는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의 대표작
- 삶 속에 체화된 영성이 무엇인지를 다윗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

[본문 중에서]
“왜 하필 다윗인가? 대답이 될 만한 여러 이유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다윗의 현세성이다. 그는 두드러질 정도로 너무도 인간적이다. 싸우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죄를 짓는 다윗, 야만적인 철기 시대 문화의 도덕과 관습의 제한을 받는 다윗, 여덟 명의 아내를 둔 다윗, 분노하는 다윗, 빗나가는 다윗, 마음씨 좋은 다윗, 춤추는 다윗 등.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구원과 거룩을 가져오시는 일에 사용하실 수 없거나 사용하시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예수님 이야기로부터 최대의 유익을 얻어 내려면, 먼저 다윗 이야기 속에 우리의 상상력이 흠뻑 젖어들게 해야 할 것이다.”

“삶이란 전부 유기적으로,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세한 것들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름들과 지문들, 거리 이름과 지역 날씨, 저녁 식사용 양, 빗속에 펑크 난 타이어 등, 이런 것들이 삶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은 형이상학적인 논술이나 거창한 표현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자녀들에게 그들이 누구이며 인간으로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일러 줄 때 그리고 친구들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인간으로서 무엇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를 말해 줄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다윗 이야기 속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부터 인간 상상력의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기까지, 인간됨의 영역 전체를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실재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 갖는 경험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의 여러 차원을 이 정도까지 보여 주는 성경 이야기는 없다.”
-1. 이야기: 다윗과 예수님(삼상 16장-왕상 2장)

“신앙이라는 모험을 감행한 사람들 대부분은 평신도다. 그런데 왜 평신도들은 신앙 문제에 관해 꼭 공인된 전문가들(성직자들)의 지배 밑으로만 들어가려고 하는지 모를 노릇이다. 목사인 나의 지도만 무작정 따르려 하는 이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놀라움과 유감을 금치 못한다. 그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며 그들 안에는 막 거듭난 사람들이 보여 주는 보편적 특징인, 스스로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처럼 스스로를 낮추어 보는 자기 이해를 얻게 된 것일까? 분명 성경이나 복음으로부터는 아니다. 그들은 바로 문화(세속 문화든 교회 문화든)에서 그러한 자기 이해를 얻게 된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특권과 힘에 애착을 갖고 있는 지도자들의 거창한 허세로 인해 그들은 그만 겁을 집어먹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영광을 포기하고 그저 가련한 소비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소비자는 그저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교회 장의자에 또 텔레비전 스크린 앞에 수동적으로 잠자코 앉아서, 종교적으로든 세상적으로든 온갖 착취와 농락의 대상이 될 뿐이다.” 
-2. 이름: 다윗과 사무엘(삼상 16:1-13)

“그 후 25년이 지나고 이제 목사가 된 나는, 예배 장소에 들어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깥 세상에서 사용하던 어휘의 최소한 50퍼센트는 남겨 두고 예배당에 들어온다. 그들은 전혀 다른 어휘를 사용한다. 그들은 조금 긴장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고,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일할 때 쓰는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임을 깨달았다. 만일 내가 그들에게 '교회에서 쓰는 말'로만 이야기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듣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스테인드 글래스와 오르간 반주 분위기에만 접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베들레헴의 말구유, 갈릴리의 고기잡이 배, 베드로의 욕설, 마리아의 눈물을 실감할 수 있겠는가? 골고다의 십자가는 말할 것도 없다. 체내 아드레날린 수치를 마구 증가시켜 놓은 화요일의 사업 거래, 배우자에게 배신당한 것을 알게 된 수요일의 혐오감, 금요일 오후의 지루한 권태.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러한 일들을 재료로 삼아 구원 사역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그들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일차적 장소를 예배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물론 예배당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우리의 영성, 즉 성령님이 우리 안에 형성시켜 가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성장시키고 실천할 일차적 장소는 예배당이 아니다.”
-3. 일: 다윗과 사울(삼상 16:14-23)

“그 날 다윗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사랑했다. 그는 사울 왕을 존경해 마지않았다. 그는 사울 왕의 시중을 드는 자였다. 사울은 화려하고 강력한 왕이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 그를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투구를 벗고 칼을 풀고 갑옷을 벗어 버렸다. 전문가의 도움을 거절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사울의 갑옷을 입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다면, 그것은 끔찍한 재난을 초래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무기는 항상 그런 재난을 초래한다. 다윗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 자신에게 맞는 무기였다.”
-4. 상상력: 다윗과 골리앗(삼상 17장)

“우리는 우리의 겉모습만 보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만난다.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이용 가치가 있을지 그리고 우리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 계산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를 쓱 훑어보고 즉석에서 판정을 내린 다음 어떤 범주에 포함시켜 버리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우리 각자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를 우리 이하의 존재로 대우한다. 그런 사람들과 계속해서 같이 있을수록 우리는 점점 우리 이하의 존재가 되어 간다. 
 그런데 우리 삶에 이와는 다르게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는 우리를 이용할 목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 내면의 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우리의 약점을 잡거나 우리에게 흠집을 내려 하지 않고, 우리의 속 생각을 알아주며, 내적 신념을 따르려는 삶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우리의 내면 가장 깊은 곳을 굳게 다져 준다. 그는 바로 친구다.”
-6. 우정: 다윗과 요나단(삼상 18-20장)

“우리는 일반인을 막연하게 사랑할 수는 없다. 어떤 부류를 뭉뚱그려 사랑할 수는 없다. 어떤 법령이나 법규에 입각해 사랑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오직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진,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한 개인을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므비보셋을 말이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안심시키며 한 말에서 우리는 사랑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겁낼 것 없다’(삼하 9:7).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이 구절을 자주 만난다. 그것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삶에는 두려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그 힘과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우리를 깔아뭉개고 학대하고 이용하고 해치우는 데 사용하지는 않을까? 우리는 조심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지닌 채 하나님 앞에, 힘과 신비의 하나님 앞에 선다. 그분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 것인가? 우리를 벌주시고 멸하시고 우리의 자유를 앗아 가시지는 않을까? 사람들에게서 경험한 바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분명 가능한 일일 뿐더러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안심을 시켜 주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 푹 놓아라. 염려할 것 없다.’ 다윗도 여기서 이 말을 하고 있다.”
-16장 사랑: 다윗과 므비보셋(삼하 9장)

  • 역자 이종태
  • 저자 유진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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