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당태종을 사로잡다-구범회 [출판사:나눔사]
이 책은 국내외를 망라하여 연구와 출판은 물론 언급된 것이 별로 없는
당(唐)나라와 원(元)나라 시대 기독교 이야기 이다.
이 책은 국내외를 망라하여 연구와 출판은 물론 언급된 것이 별로 없는
당(唐)나라와 원(元)나라 시대 기독교 이야기 이다.
기독교가 당나라와 몽고, 그리고 원나라에서 번성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거나 믿는 이는 아주 드물다. 그러나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당나라 역사서인 신.구당서(新.舊唐書)와 당회요(唐會要), 원나라 사료인 원사(元史)와 원전장(元典章) 등을 통해 생생하게 입증되고 있다. 그리고 당나라 덕종(德宗)황제 때인 건중(建中) 2년 (781년)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震景敎流行中國碑)는 당나라 기독교인 경교(景敎)의 전래와 당시 활동상황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경교는 말 그대로 “크고 밝으며 빛나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종교라는 의미다. 공식 명칭은 서기 498년 셀뤼시아에서 결성돼 페르시아, 소아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등지를 무대로 1천년 동안 번성했던 ‘동방교회’다. 흔히 동방교회로 불리는 그리스 정교회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교파다. 시대적으로도 그리스 정교회보다 훨씬 앞선다. 세간에는 네스토리우스(Nestorius, 콘스탄티노플교회대주교파)파(派) 기독교로 알려져 있다.
신학논쟁을 내세운 로마교회가 5세기 초 이단으로 낙인찍인 결과다. 이 기록대로라면, 오늘날 개신교의 역사는 1천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바로 이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당나라에 들어와 경교가 됐다. 경교라는 이름은 현지화, 토착화를 위한 몸짓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태종 이세민의 치세(治世)인 정관(貞觀) 9년(635년)의 일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태종은 자신의 총신이자 재상인 방현령(房玄齡)을 황궁 서문 밖가지 내보내 기독교를 전하러 온 아라본(阿羅本, 아로펜)주교 일행을 극진한 예우로 맞아들이는 ‘파격’을 내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태종이 아라본 주교의 설교를 들은 뒤 바로 “바른 진리를 깊이 알았도다. 황제의 특별 명령으로 전수를 명하노라”며 선뜻 기독교의 당나라 포교를 허락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경교는 황제와 황실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당나라에서 2백여 년 동안 번성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몽고제국이 기독교 정신이 바탕 위에 세워졌다는 점이다. 모두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몇 가지 근거만 제시하자면 이렇다. 1206년에 세워진 몽골제국은 타타얼부, 극렬부, 내만부 왕고부, 몌얼치부, 워얼라부 등 6개 부락이 합쳐 만들어진 연합국가다. 이 중 극렬부, 내만부, 왕고부, 몌얼치부의 주민 대다수가 ‘야리가온’으로 불리던 기독교도였다. 특히 극렬부의 경우, 수령을 비롯한 전체 주민 20만명 모두가 크리스천이었다. 원나라를 세운 세조(쿠빌라이)황제의 모친인 별길태후 등이 극렬부 왕족 출신이며, 왕고부 등지에서 마경상(馬慶祥)과 마조상(馬祖常), 조세연(趙世延) 등 몽고와 원나라 조정을 이끌었던 수많은 기독교도 학자와 중신을 배출했다.
또 칭기즈칸의 최고 책사였던 친카이와 몽고의 따칸 워쿠오타이의 재상이었던 볼가이 역시 독실한 기독교도 였다. 특히 친카이의 기독교적인 사고가 칭기즈칸의 통치이념을 정립하고 제국의 기틀을 다지는데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종교에 관대했던 칭기즈칸이 종족과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며 자유로운 교차혼인을 허용한 것도 이 같은 기독교적인 토양 및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나라에서 경교였던 기독교는 몽고와 원나라에서는 야리가온(복을 나눠주는 사람)으로 불리며 당나라 때보다도 더욱 번성했다. 불교, 도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종교중의 하나로 크게 성장했다. 원나라 조정에서 야리가온을 관리하기 위해 승복사(乘福司)라는 기관을 별도로 설치할 정도였다. 특히 사경을 헤매던 칭기즈칸의 넷째 아들이자 태자인 툴니를 기독교도 의사인 써리빠가 구하면서 몽고와 원나라의 최고 명약이자 황실의 비방으로 자리잡은 이른바 ‘써리빠’의 유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뒤 야리가온의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사막으로 쫓겨 가기 전까지 중국 땅 원나라에서 1백 60여 년 동안 왕성한 세력을 펼쳤다. 로마 천주교회는 이보다 훨씬 뒤인 원나라 순제 때인 서기 1294년에 이르러서야 포교를 허락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