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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심장을 되살리는 하나님의 법 -이성희 [출판사:마음과 생각]

당신의 심장을 되살리는 하나님의 법 -이성희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 나 좀 살려 주세요!”

홀로 신음하며 죽어가는 당신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회복의 이야기!!

 
사기, 이혼, 병마, 자녀문제, 귀신들림, 송사의 고통….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영혼과 삶의 실제적 구원과 변화가 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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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난 뒤 줄곧 전도 현장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만남들을 주선하셨기 때문이었을까.
내게는 한결같이 아프고 찢기고 고통당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성과 부를 지닌 사람들조차 내게 찾아올 때는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사연을 안고 찾아왔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안 다니는 사람이든 그들은 내게 이런 말을 해 왔다.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가정이 깨어지고, 우울증이 깊어지며, 귀신들린 자녀가 나오고, 가계에 저주받은 듯한 일이 생겨날 때 그들은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 자체에 중압감을 느껴서 그간 다니던 교회에도 알리지 못했다며 힘들어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것인데,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강력한 복음의 무기를 누구에게도 건네받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우리는 왜 이 강력한 무기를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건네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들조차 사실은 복음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복음으로 알고 있기보다는, 홀로 단정하고 고상하게 살아가며 삶의 도를 깨닫는 게 복음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피 흘리며 쓰러진 형제, 자매들을 봐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그들에게 무엇을 건네줘야 할지 모를 수밖에 없다. 복음이란 그 어떤 균도 소멸할 수 있는 항생제처럼 강력한 것인데도, 우리는 그저 육체의 영양상태를 보충해 주는 비타민제처럼만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예수님께선 마귀의 일을 멸하고 하나님나라를 임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하기 위해 먼저 마귀의 일을 멸하신다는 뜻이다. 즉, 아군을 포로로 붙잡고 있는 해적들을 소탕하는 것이 먼저지, 음식과 영양제를 주며 그곳에서 잘 살라고만 한다면 순서상 맞지 않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해적을 소탕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 귀신들린 자, 각종 소송에 휘말린 자, 가계의 저주 속에 놓인 자들을 만나면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한다. 복음의 위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 그 이름의 권능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을 읽으며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복음의 능력으로 해적을 소탕하는 자임을 알게 되었다.눅 10:30-36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려면 강도 만난 이웃을 구해줘야 하는데, 특이한 것은 한 이웃이 강도 맞았을 때 레위인도, 제사장도 그를 피해 도망가 버렸다는 점이다. 왜 그들은 도망가야 했을까.
그것은 영적으로 강도 만난 자, 즉 마귀에게 강도 맞아 어찌 할 바 모르는 우리 이웃들을 볼 때 ‘나도 강도 맞지 않을까?’ 혹은 ‘이 사람을 돕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먼저 사로잡혀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 또한 강도들이 심어주는  생각인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려움의 생각을 따라 행동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만은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두려움 대신 사랑에 사로잡혔다. 강도 만난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영적 사역으로 그를 일으켜 준 것이다.
그런데 말씀에 소개된 선한 사마리아인은 저주받은 자의 상징이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남자들이 멸종되면서부터 혼혈민족이 되었고, 그때부터 그들은 같은 동족들로부터도 개 취급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수모 속에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의 고통을 알았고, 하나님 사랑의 완전한 치유를 실현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선한 사람은 아니지만, 사마리아인과 같은 저주 속에 살아왔던 것은 분명했다. 우상을 섬겼으며, 그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에 매여 살았다. 귀신에게 빌지 않으면 하루도 평안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영적으로 강도 만난 자는 바로 나였다.
그런 나의 상처를 하나님의 사랑이 치유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알게 된 순간, 나를 붙잡고 있던 악한 해적들이 삽시간에 소탕됨을 경험했다. 세상의 미련한 자요, 지혜롭지도 못하며 문벌도 없는 나를 하나님의 사랑이 일으켜 주셨던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할수록 나의 부르심에 대해서도 확실해져 갔다. 왜 내 사무실로 찢기고 상처 난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볼 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성경 말씀대로, 또한 내가 경험했던 대로, 복음을 복음 그대로 믿고 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그 모든 일들을 해결하실 것임을 믿기 때문이었다. 십자가의 복음은 강도 만난 이웃을 살리는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처방전이었다.

  • 저자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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