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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호 [출판사:부흥과 개혁사]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호

얼마 전 우리나라를 잠시 방문한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헬스클럽에 등록 했습니다. 클럽에 있는 러닝머신에 올라 모니터를 켜고 이어폰을 꽂았습니다. 느린 속도로 러닝머신을 작동시킨 후 운동하며 볼 만한 채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60~70개가 넘는 케이블 채널 중 제 기억으로 거의 삼분의 일에 가까운 방송들이‘강호동,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예능 프로’들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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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헬스클럽을 처음 간 저에게 이건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편안히 앉아 TV를 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제게 그날 헬스클럽은 우리나라 TV 프로의 현실을 가감 없이 생생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강호동, 유재석 씨의 인기 그리고 그들이 주가 되는 예능 프로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프로들이 재방송들을 등에 업고 이토록 압도적으로 케이블 TV를 장악하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포탈 뉴스들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에 나와서 떠든 ‘잡담’으로 상당 부분 채워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제 더 이상 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사건들은 ‘터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능 프로를 중심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예부터 할리우드에서는 ‘가십을 지배하는 자가 할리우드를 지배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할리우드에 해당하는 현상이 우리에게는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일까요? 실로 뉴스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때로는 읽는 이의 구미에 맞도록 적절히 과장 또는 왜곡되는 현재의 모습이 한국의 인터넷 포털 뉴스에 서처럼 생생하게 드러나는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제 뉴스는 더 이상 발생한 사실을 전달하는 통로가 아닙니다. 뉴스는 이제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창조의 영역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설혹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 주변의 자극적인‘스토리’입니다. 그리고 숨겨진 사건 주변 스토리들을 파내어 더 극적이고 더 흥미 있게 만들어 내는 것이 기자의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뉴스도 재미 있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뉴스가 진실인가 아닌가보다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 있는 뉴스인가에 뉴스의 가치를 결정하는 무게의 중심이 옮겨 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는 이슈는 바로‘재미’라는 두 글자입니다. 예능 프로에 물든 한국 TV는 이 사실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재미에 대한 욕구는 다른 말로 하면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욕구입니다. 채우고 또 채워도 결코 다 채워지지 않을 재미 또는 엔터테인먼트의 욕구를 누가 남보다 앞서서 채우는가 하는 것이 그 어떤 곳보다도 치열한 경쟁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서 생존을 약속하는 열쇠입니다.

‘제발 날 재미있게 해 줘. 틀린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도 지루한 것만은 참을 수 없어.’이렇게 외치는 우리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꺼내고 시간을 갖다 바칩니다. 재미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나의 정신마저 비우고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의 황당무계한 잡담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같이 웃습니다. 나와 함께 사는 가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모르면서도 어떤 탤런트 부부가 서로 방귀를 뀌면서 사는지 아닌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합니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미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재미는 우리에게 결코 충족감을 주지 않습니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방귀를 텄다는 한 연예인 부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충족감을 주지 않습니다. 또한 재미는 즉각적입니다. 충족감과 아무 관계가 없는 재미는 아무리 쌓여도 모이지 않습니다. 부어도 차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재미는 끝없는 반복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시간과 함께 재미는 점점 더 무뎌집니다. 다음 단계의 재미를 위해서는 더 큰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재미에 목마른 사회는 위험하고 얕은 사회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교육 방송만 보는 사회가 더 낫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균형입니다. 재미에 지나치게 편중된 사회는 필요 이상으로 심각한 사회만큼이나 위험합니다. 그러나 재미에 빠진 사회보다 더 위험한 곳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재미에 중독된 교회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재미가 이미 오래 전 교회 안으로 파고들어왔습니다. 재미에 장악된 교회는 재미에 중독된 사회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치명적입니다. 교회 안에 파고든 재미가 주는 위험은 한국 사회를, 케이블 TV의 상당수를 차지한 예능 프로들이 주는 위험보다 더 무섭습니다.

날마다 예능 프로들만 보는 자신이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각종 예능 프로들을 다 섭렵한 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무감만을 약속하는 이 재미가 교회로 들어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교회에서 느끼는 재미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고 심각 한 착각에 빠지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재미가 쓰고 있는 영적 가면들 때문입니다. 교회 속에 파고든 이 재미는 무서운 영적 가면을 쓴 채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재미가 남기는 각종 허탈감마저 중화시키는 힘을 발휘합니다. 그렇기에 사회 속의 재미보다 교회 안의 재미가 더 위험하고 치명적입니다.

교회 안에서 느끼는 재미는 무엇보다 감정적 흥분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흥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성령 충만, 성령의 기름 부음 등. 흥분으로 대표되는 교회 안에서의 재미가 하나님의 임재가 되고 성령 충만이 되며 또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탈바꿈합니다. 이런 가면을 쓴 채 교회 안에 스며들어온 수많은 재미 가운데 가장 선봉장을 꼽으라면 우리는 서슴없이 오늘날 CCM으로 불리는 찬양을 꼽을 수 있습니다.

  • 저자 옥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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