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높은 아파트의 서울이 아닌 가난한 코흘리개 촌놈으로 태어났고,
나는 양반집 큰아들이 아니라 머슴 집 과부의 셋째 아들로 자랐습니다.
나는 남들이 패배자라고 보는 재수생이었고 촌구석 지방대를 나온 사람입니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고 주먹을 꼬옥 쥐고 일어서기도 했던,
빌어먹을 나는 높은 자가 아니라 늘 낮은 자입니다.
지금도 나는 높은 자 곁에 있지 않고
장애인, 전과자, 과부, 고아 같은 낮은 자와 함께 살아갑니다.
내가 낮은 자이기에 높은 자보다 낮은 자가 편합니다.
혹시 스스로 낮다고 여기는 영혼이 머리가 나쁘다고 낙심할까 싶어,
혹은 스스로 높다고 여기는 영혼이 머리가 너무 좋아 교만할까 싶어,
낮은 자가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도 보잘것없는 이라고 나도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음 자체가 희망이기에 엄청나게 높은 꿈을 키우며 가슴 펴고 어깨 걸고,
끝내주게 그 꿈을 하나씩 이루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한 청년이 청계천 빈민촌에 천막을 치고 십자가를 걸었습니다. 그는 ‘활빈(活貧)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그날부터 가난한 이들과 삶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넝마주이를 하며 물질의 가난으로 인해 영혼까지 피폐해진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그 청년의 이름은 김진홍입니다.
한때 ‘노동자 목사’로 불렸던 김진홍 목사의 출발은 그러했습니다. 그는 복음대로 살고자, 낮은 자들 곁에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살리는(活貧)’ 교회의 목사답게 노동도 하고, 사회운동도 하고, 감옥에도 갔습니다. 청계천에서 시작된 그의 노정은 남양만 갯벌을 거쳐 지리산 두레공동체와 구리의 두레교회까지 40여 년 동안 계속됩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도시에서 농촌으로, 중국과 지리산 골짝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굽이굽이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특기는 실패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의 실패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흘을 굶고 배고파 우는 어린 아이의 눈물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자기 등에 업혀 죽어간 과부의 시신 앞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감옥에서 온갖 잡범들과 어울려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갑니다. 때로는 무력감에 몸을 떨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했지만, 그는 바닥에서 하늘을 보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러기를 40년, 가시밭인 줄로만 알았던 그곳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김진홍 목사는 활빈 교회와 두레 교회를 섬기면서 한국 교회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독재 시절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에 앞장섰고, 민주화가 된 후에는 한국 교회의 정치적 순기능을 역설하며 시민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지만, 김진홍 목사가 40년을 통틀어 변함없이 지향해온 것은 오직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를 바라는 목민(牧民)목회였습니다.
이 책은 김진홍 목사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1995년에 냈던 것입니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한국은 IMF 사태를 겪기 전이라, 경제 위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책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오늘날,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전 세계가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고, 한국의 청년백수만 400만에 이릅니다. 이제 이 책은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거워진 삶의 무게 앞에 절망하고 있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지 못합니다. 김진홍 목사는 그런 이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거침없이 풀어 놓으며, 절망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할 때마다 입은 상처는 흉터로 남았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올바른 사랑, 기도, 그리고 온전한 열매와 나눔에 대한 그의 성찰이 녹아있습니다. 그 성찰은 우리에게 희망을 품고 살아갈 이유와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40년 전,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황무지에서 시작된 이 울림이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인생이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