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 -백소영 [출판사:대한기독교서회]
엄마’가 된 어느 날 ‘내’가 사라졌다!
완벽한 엄마의 환상에 갇힌 여자들의 ‘아프고’ ‘미칠 것 같은’ 이야기
엄마’가 된 어느 날 ‘내’가 사라졌다!
완벽한 엄마의 환상에 갇힌 여자들의 ‘아프고’ ‘미칠 것 같은’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엄마’이다. 자신의 욕망이나 꿈, 계획, 자유 따위는 묻어두고, 접어두고, 미루어두고 오로지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끝없이 헌신하는 엄마, 자식의 성공과 행복이 곧 자신의 삶의 이유와 보람이라고 믿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라는 수식어를 달아준다. 어쩌면 자식을 향해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베푸는 엄마의 모습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성은 ‘본능’이자 하나님이 태초부터 여자들에게 부여하신 ‘소명’이므로.
그런데…만일 모성이 본능이고, 하나님이 주신 절대 소명이라면 엄마로서의 삶은 어떤 갈등이나 분노, 흔들림도 없이 지속적이어야 하는데 왜 엄마의 길을 가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여자들은 아프거나 미치겠다고 고백하는 걸까? 무엇이 이들을 아프거나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정말 모성은 여자들에게 주어진 본능이고, 운명이고, 하나님의 섭리인 것일까?
이 책은 불경(?)스럽게도 모성이 ‘여자’들에게 주어진 본능이자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여겨지지만 실상 그러한 믿음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가 보편인 양, 절대인 양, 진리인 양 여기고 있는 결혼제도가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조적 질서가 아니라 고작 200-300년 전에 고안된 인간 삶의 한 제도적 형태일 뿐인 것처럼.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우선 한국·개신교·도시·기혼여성 182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뒤 그들의 모성 경험을 여섯 유형(모성결여형, 자격미달형, 자유부인형, 무한책임형, 천상소명형, 지상명령형)으로 정리했다. 이것을 통해 교회생활을 오래했을수록, 근본적·보수적 성향이 강한 신앙전통에서 자랐을수록, 거기다 전통적인 유교적 전제가 강한 가정에서 자라났을수록 엄마와 아내의 의무에 대한 강박관념이 크다는 것을 분석해냈다. 또한 저마다 다양하고 다른 모성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유형의 엄마들은 모성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며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석해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저자는 한국 유교전통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세계 역사에서, 현대 제도에서 여성과 모성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달라져왔는지를 심도 있게 추적했다. 그래서 얻는 결론이 현대의 모성은 특별한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엄마라는 덫에 걸려 아파하고 미쳐가고 있는 여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였다. 엄마 노릇으로 힘들어하는 여자들에게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기적인 엄마, 불량 엄마, 못된 엄마가 아니라 다만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의 역사와 산업사회, 출산과 육아를 오롯이 사적 영역으로만 치부하는 문화적 전제와 잘못된 제도가 만들어낸 모성이라는 환상에 갇혀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 자신을 용서하고 상황을 개선시킬 대안을 만들어보자고…….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름 아닌 제도의 개선이다. ‘엄마 됨’과 ‘나 됨’이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제도. 그러기 위해선 탁아 시설을 개선하는 등의 물리적 제도개혁과 함께 육아가 전적으로 엄마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어른들에게 부여된 공동의 책임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동반되어야 한다. 모성은 여자들에게만 주어진 본능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고 또한 공동체는 새로운 생명을 길러내야 함으로…….
결혼하는 선택을 했고, 유교전통이 가르친 대로, 기독교 전통이 가르친 대로, 현대교육이 가르친 대로의 모성 실천에 한동안 열심을 냈던, 그러다 결국에는 자아가 분열되는 듯한 경험을 한, 아니 여전히 하고 있는 저자는 오늘을 사는 여자들에게 당분간 양다리-엄마 노릇과 자신의 꿈 펼치기-를 걸치라고 당부한다. 고단하고 힘든 길이지만 우리의 딸들이, 그 딸들의 딸들이 통합된 노동과 사랑의 공동체적 삶을 당연시 여기는 문화적 전제와 제도적 장치 속에서 살게 하려면 지금 여자들이 의도성을 가지고 현실의 제도 안에서 버티고, 부딪치고,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할 수 있다면 결혼을 하라고 당부한다. 두 사람이 이뤄가는 제도적 공동체로서의 결혼은 섬김과 나눔으로 상징되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관계를 실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첫걸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공동체는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서로 평등하게 나누고 섬기기를 실천하는 공동체 즉 ‘교회’와 닮았다는 점에서 작은 선교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다.
애 둘을 낳고도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밤에 저녁 먹으러 외출하면서, 남편과 둘이서 짧은 휴가를 다녀오면서, 스스로에게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 그리고 남들에게는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사회를 소망하는 이 땅의 모든 여자들에게 이 책은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