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요한 크리소스톰 [출판사:규장]
부자 - ‘황금의 입’ 요한 크리소스톰
(Rich Man and Lazarus)
주님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당신은 지금 부자와 나사로의 삶 중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자신의 배만 채우다 지옥불에 떨어진 부자의 삶은 아닌가
이 땅과 하늘에서 칭찬받는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럼 이 길을 따르라!
‘황금의 입’ 요한 크리소스톰이 전하는 진정한 하늘의 부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마태복음 25장 40절 -
‘황금의 입’으로 불린 설교자 중의 설교자, 요한 크리소스톰
4세기 세속에 물들어가는 교회를 향해 외친 그의 절박한 충고가
지금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생생히 울려 퍼진다 !
그는 아모스 선지자의 정신과 세례 요한의 심령으로
세속에 물들어가는 크리스천들과 크리스천 위정자들을 꾸짖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설교자였다.
결국 이로 인해 유배를 당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메시지를 타협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물질 만능주의, 돈과 권력 앞에 아부하는 이 시대에
크리스천이 사표(師表)를 삼아야 할 인물이 바로 요한 크리소스톰이다.
이 책에 실린 요한 크리소스톰의 메시지는 그가 안디옥 교인들에게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연속적으로 설교한 내용으로,
촌철살인의 성경해석, 가슴을 치게 만드는 말씀의 적용,
시대를 초월하는 크리스천의 삶의 원리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누가 진정 부자이며, 누가 진정 가난한 자인지를 역설했다.
아울러 의인이 이 세상에서 왜 고통을 받으며,
불의한 자가 이 세상에서 왜 형통하며,
고난받는 의인과 형통한 악인에 대한 현세와 내세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가에 관해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며,
현세의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 한국어판 편집자의 글 중에서 -
[한국어판 편집자의 글]
행함이 없는 믿음,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황금의 입’으로 불렸던 설교자 중의 설교자 요한 크리소스톰(주후 347?~407년).
그는 아모스 선지자의 정신과 세례 요한의 심령으로 세속에 물들어가는 크리스천들과 크리스천 위정자들을 꾸짖었다. 그는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제국, 기독교를 지지하는 배후 세력인 로마 황실의 사치와 향락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탄핵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설교자였다. 결국 이로 인해 유배(流配)를 당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메시지를 타협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물질 만능주의, 돈과 권력 앞에 아부하는 이 시대에 크리스천이 사표(師表)로 삼아야 할 인물이 바로 요한 크리소스톰이다.
하나님의 사람, 요한 크리소스톰
그는 초대 기독교 역사에서 유명한 도시였던 수리아(시리아)의 안디옥에서 태어났다.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워 파송했던 도시가 바로 그 안디옥이다.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되기 전만 해도 안디옥은 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안디옥이 번성했던 이유는 고대의 무역로가 지나가는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는 이곳에서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감화력 아래 자랐다. 청년 시절에 그리스 고전(古典) 교육을 받으며 잠시 수도사 생활을 하였지만, 이내 안디옥교회로 내려와 집사로서 생활하다가 목회 소명을 받고 주후 386년 안디옥교회의 감독이 되었다.
주후 4세기와 5세기, 신학의 중심지는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이었다. 두 곳은 성경해석의 입장이 확연히 달랐다. 오리겐(Origen)과 같은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은 성경의 비유적, 풍유적 해석을 즐겨 하며 소위 ‘깊은 의미’를 추구한 반면에, 안디옥은 성경의 역사적, 문자적 해석을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크리소스톰도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중시하며 설교하였다. 그는 세세한 신학 논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크리스천의 실천적 삶의 원리들을 설교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는 믿음의 실천을 중시하는 교부(敎父)였다.
그는 안디옥에서 교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교인들의 박수갈채와 회개의 눈물 때문에 그의 설교가 자주 중단될 정도였다. 그는 설교와 성례 집례 외에도 교인들에게 영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개개인의 문제까지 세심히 돌아보는 목양 사역을 펼쳤다.
주후 397년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궐석(闕席)이 되자 그곳 사람들이 크리소스톰을 안디옥에서 납치하다시피 데려와서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으로 세운 것은 그 당시 그의 높은 명성과 평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자후(獅子吼)를 발하는 설교로 황실의 사치와 방탕을 질타했다. 그 후 그는 황후 에우독시아의 박해를 받아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는 유배지에서도 굴하지 않고 서신을 통해 신실한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을 전했다.
주후 407년 9월 14일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타협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
이 책에 실린 요한 크리소스톰의 메시지는 그가 388년 안디옥 교인들에게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연속적으로 설교한 내용이다. 비록 1,600여 년 전에 한 설교이지만 대단히 현대적인 설교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성경해석, 가슴을 치게 만드는 말씀의 적용, 시대를 초월하는 크리스천의 삶의 원리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는 이 연속 설교를 통하여 누가 진정 부자이며, 누가 진정 가난한 자인지를 역설했다. 그 밖에도 의인이 이 세상에서 왜 고통을 받으며, 불의한 자가 이 세상에서 왜 형통하며, 고난받는 의인과 형통한 악인에 대한 현세와 내세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가에 관해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며 현세의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다섯 번째 설교는 안디옥에 큰 지진이 있고 나서 행한 설교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왜 세상에 자연재해를 허락하시며, 크리스천은 자연재해에서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설교를 남겼다. 지진과 쓰나미, 가뭄, 지구 온난화 등 환경과 자연재해의 시대에 접어든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적절한 메시지라 생각된다.
행함으로 네 믿음을 보이라!
이 책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크리소스톰이 ‘행위 구원’을 말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누구보다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역설하는 자이다. 그의 이러한 특성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그의 《로마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의 신학 사상의 건전성은 종교개혁자 칼빈의 저작에서 그의 글들이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크리소스톰은 목회적 필요에 의해, 이 부자와 나사로 비유 설교에서는 소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자부하는 안디옥 교인들에게 “구원의 믿음에 상응하는 행실을 보이라”, “회개의 열매를 보이라”고 역설하는 야고보 사도의 입장에 선 것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약 2:14-18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말하는 바울의 입장과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의 입장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람은 반드시 행함으로 그 믿음을 증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인은 많으나 성도는 희소하고, 신자는 많으나 제자는 희소한 오늘 우리 시대에, 말로만의 믿음이 아니라 참된 행실이 너무나 절실한 이 때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긍휼의 마음을, 크리소스톰의 메시지가 상기시켜줄 것이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宴樂)하는데”(눅 16:19).
성경에 나오는 무심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나사로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주 우리 하나님이여, 오늘 우리의 눈을 뜨게 하사 우리의 나사로를 보게 하시든지 아니면 우리 앞에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을 보게 하옵소서!
- 규장 편집국장 김응국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