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다 성경 성전 이야기 - 류모세 [출판사:두란노]
열린다 성경 성전 이야기 - 류모세
체험, 성전 속으로!
바쁘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우리 시대 예배자가
배워야 할 참된 예배는 무엇인가.
성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예배를 묵상한다!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성경의 세계가 펼쳐진다!
한의사가 이스라엘 현지에서 몸과 마음으로 느낀 생생한 성전 이야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전의 하루는 어떠했을까?
제사장들은 어떤 임무를 수행했을까?
사탄이 예수님을 데려간 성전 꼭대기는 어디일까?
성경을 2,000년 전 기록된 고대 문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읽으려면 먼저 성경이 탄생한 이스라엘의 문화를 알고 공감해야 한다. 유대인의 삶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많은 사역을 하셨다. 성전과 관계된 배경지식을 알아야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성경 이야기가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바쁘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우리 시대 예배자가 배워야 할 참된 예배는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성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진정한 예배를 묵상할 수 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으로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로드맵을 제공해 준다.
저자 특유의 유머와 입담이 살아 움직이는 이 책은 유대인의 문화와 풍습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열어 줄 것이다. 누구도 대답해 주지 못한 암호문을 푸는 패스워드를 제공할 것이다.
[본문 맛보기]
성전은 예수님의 행적을 다룬 사복음서의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다. 사복음서의 이야기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 현장을 크게 세 군데로 압축한다면,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로 연결되는 게네사렛 평야와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성전이다. 특히 갈릴리에서 사역하신 예수님은 유월절, 초막절과 같은 절기가 되면 거의 예외 없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다.사복음서에서 성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성전의 구조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p. 15
솔로몬 행각 vs 왕의 행각
성전 바깥을 따라 둘러선 동쪽의 솔로몬 행각과 남쪽의 왕의 행각은 모두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러나 두 장소에 모이는 사람들의 성향은 확연하게 달랐다. 솔로몬 행각은 로마에 적대적인 유대 민족주의자와 종교주의자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반면 왕의 행각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방화된 친로마파 유대인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지극히 종교적인 도시인 예루살렘, 그것도 성전을 둘러싼 행각에 이방화된 친로마파 유대인들의 장소가 있었다는 것은 사뭇 충격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주로 사역하던 갈릴리 지방과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유대 지방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갈릴리와 유대 지방 중에서 어느 곳이 더 민족주의적이고 종교적이었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 흔히 유대 지방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갈릴리 지방이다. p. 76
레위인: 성전의 밤을 지키는 파수꾼
성전의 문들을 지키는 일은 낮 시간뿐 아니라 밤 시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밤에는 성전의 문들 가운데 24곳에 불침번을 섰다. 21곳은 레위인들이 지키고, 성전 안쪽의 문들 가운데 세 곳은 레위인과 제사장이 함께 지켰다. 각 조는 열 명으로 구성되었고, 성전 안쪽의 세 곳은 레위인과 제사장 각각 열 명씩 20명이 지켰다. 결국 레위인 240명과 제사장 30명이 밤에 성전 곳곳에서 불침번을 선 것이다.
성전 수비대 감독은 밤에 수시로 순찰을 하고, 불침번은 순찰 중인 감독이 오면 합당한 예를 표해야 했다. 만약 불침번을 제대로 서지 않고 졸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그는 매를 맞고 옷을 빼앗겨 불에 태워지는 수치를 당했다. 예수님이 밤에 도적같이 오실 때 우리는 모두 깨어 있어야 하는데, 만약 졸고 있으면 매를 맞고 옷을 빼앗겨 벌거벗은 가운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p. 139-140
‘사해’인가 ‘염해’인가
일반적인 바다의 염도가 3.7%인 것과 달리 이스라엘의 사해(염해)는 바다보다 9배가 높은 3%의 염도를 자랑한다. ‘생긴 모양’을 가지고 사물을 파악하는 헬레니즘(서구 사상)의 개념으로 볼 때 사해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죽은 바다일 테지만, ‘기능’을 중심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헤브라이즘(유대인 사상)의 시선으로 보면 ‘사해’가 아니라 ‘염해’다.
흔히 이 바다를 사해라고 부르지만 성경 어디에도 ‘사해’라는 표현은 없다. 오직 염해라는 표현이 아홉 번이나 등장할 뿐이다. 유대인들도 이 바다를 ‘얌 하멜라흐’라고 부르는데 이는 ‘염해’라는 성경적 표현 그대로다. 이는 성경을 읽는 우리의 사고가 얼마나 헬레니즘적인가를 보여 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이 태어난 고장은 예루살렘인데 그것을 읽고 이해하는 우리의 머리와 사고는 서구 사상이 탄생한 아테네에 있지 않은가. p. 231
희생제사란 무엇인가?
히브리어에서는 희생제사를 의미하는 단어로 ‘코르반’을 사용한다. 코르반은 ‘가까이 간다’, ‘친밀한 관계를 회복한다’를 의미하는 ‘미트카레브’에서 온 단어다. 유대인들은 희생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히브리어의 ‘희생제사’란 단어 속에는 ‘버리고 포기하고 불태운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오히려 ‘코르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친밀한 교제를 떠올리며 그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기쁨의 단어인 것이다. 버리고 불태워야 하는 부담감이 먼저 떠올려지는
‘sacrifice’와 다음날 있을 소풍을 앞두고 밤잠을 설치는 설렘을 담고 있는 ‘코르반’의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의 삶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비장함에 앞서서, 하나님 보좌 앞에 가까이 나아가 그분과의 친밀감 속에서 영적인 복과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시편 기자의 고백은 희생제사에 대한 유대인들의 설렘과 영적인 흥분을 담고 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_시 73:28 p.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