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의 고백 (Testimony of a Tax Collector) - E.K.베일리 [출판사:가치창조]
삭개오의 고백 (Testimony of a Tax Collector) - E.K.베일리
삭개오의 고백 (Testimony of a Tax Collector) - E.K.베일리
내가 만난 삭개오!
어느 세리의 고백, 삭개오의 고백
여기, 삭개오가 있다.
삭개오는 왜 뽕나무에 올라갔을까?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에?
지금,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되어야 하는
이 땅의 모든 삭개오들에게!
텅 빈 영혼을 채우는 단 하나의 만남, 단 하나의 말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누가복음 1:9
무엇이 삭개오에게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견디게 만든 것일까?그리고 평소의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돌발행동을 하게 만든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분을 이 여행 속으로 초대하고 싶다.
우리는 로마 제국의 뒤쪽으로 길을 떠나, 찌는 듯이 덥고 파리떼가 들끓는 팔레스타인을 거쳐 거룩한 땅의 험한 지형을 가로지른 끝에 비로소 향기 가득한 도시 여리고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야비하고 멸시받던 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바로 삭개오라는 이름의 세리다.
그 날의 장면을 그려본다.
때는 어느 늦은 여름. 여리고 전체에 희미한 땀 냄새가 바람에 실려 돌아다닌다. 뿌옇게 먼지가 일어난 거리는 시끌벅적하다. 유대의 왕이라 불리던 사내, 기적을 일으키는 사내, 바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가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사내가 있다.
키가 작은 남자. 부자이지만 결코 존경의 대상은 아닌 세리. 삭개오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사내는 예수를 만나기 위해, 인파를 뚫고 앞으로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까지 이르렀을 때, 그의 앞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무성한 가지로 뒤덮인 뽕나무가.
▶ 잘 차려입고, 많이 배웠으며, 부유했던 한 세리, 삭개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모든 품위를 내던지고 대낮에 인파를 뚫으며 길 한복판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한 것일까? 수치를 무릅쓰고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삭개오라는 이름의 이 세리를 만나봐야 한다. 그가 만난 사람들, 여리고에서 가장 가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장님, 병든 여인, 아들을 잃은 어머니, 그리고 귀신 들린 남자의 아내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삭개오가 걷으려 했던 세금보다 더 중요하고 더 영원한 것을 일러주었다.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바로 ‘그 분’을 소개함으로써.
▷▶ 부자 중의 부자, 세리 중의 세리 그리고 죄인 중의 죄인이었던 그를 구원한 것은 단순한 ‘은혜’가 아니라, 찬양의 제목대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놀라운 은혜>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예수님의 법칙이 아닐까?
삭개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오늘 예수님은 죄로 가득한 나에게도 말씀하신다. 내려오렴. 어서 내려오렴…… 삶의 많은 것들을 움켜쥔 지금 이 자리를 떠나, 그 나무 아래 삶으로.
<옮긴이의 글 중에서> -「나무 아래로, 삶 속으로」
짧은 고민 끝에, 그가 뽕나무를 오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이 장면은, 그러나 실은 그의 삶 전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다. 삭개오는 평생 나무의 등을 밟듯 다른 사람의 등을 밟으며 살아왔다. 손으로 가지를 부러뜨리고, 발로 기둥에 상처를 내며,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그는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존경받지 못했다. 남들보다 더 가졌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어려운 이웃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세리, 그리고 그 순간에도 사람들을 밟고 나무 위를 오르는 작달막한 사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났다.
삭개오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의 말대로 “나무 아래로” 내려온다. 저자 E. K. 베일리의 말처럼 그가 매달려있던 “절망의 나무에서, 교만의 나무에서 그리고 죄의 나무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다. 그가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이면을 향해, 구원과 영생이 있는 진리를 향해, 이제까지의 삶과 다른 전혀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무 아래로. 이 뽕나무 사건은 그에게 있어 이제까지의 삶(과거)과 결정적 만남(현재)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미래)까지를 모두 보여주는 삭개오 삶 전체의 축소판이다.
<본문 중에서>
삭개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당장 페인트칠을 해야 하는, 수리를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판잣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 사전에 동정이나 자비 같은 것은 없었지요.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첩 속 이름 옆에 찍힌 체납이라는 도장뿐이었으니까요.
_ 본문 16~17쪽
“미안하오, 선생. 하지만 난 이 집 주인을 찾고 있소. 눈 먼 남자 말이오.”
“내가 이 집의 주인입니다.”
“아니오.” 삭개오가 대답했습니다.
“난 30일 전에도 여기 왔단 말이오. 그리고 내가 이 집에서 만났던 남자는 눈 먼 남자였소.”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앞을 보지 못했었죠.”
_ 본문 48~49쪽
“난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갔어요.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최대한 손을 뻗어 그 분 옷자락에 겨우 손을 댈 수 있었죠.
그리고 옷깃에 닿는 그 순간, 내 몸에서 12년 동안 흐르던 피가 곧바로 멈춰버린 거예요!
몸만 치유된 게 아니라, 영혼까지 완전해졌죠.
내 믿음이 부족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걸 충분하게 만드신 거예요.”
_ 본문 64~65쪽
예수님께선 한 번도 장례식에 참석하신 적이 없다는 것도 아실 테고요. 장례식에서 가르치신 적도 없죠. 나타나실 때면 언제나, 예수님은 장례식을 부활의 장소로 바꾸어버리셨으니까요.
_ 본문 87쪽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네 집에 머물고 싶구나.”
당신이 올라가 있는 나무, 당신이 매달려 있는 가지를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 멋지지 않나요? 그리고 그런 예수님께서 당신을 내려오라고 부르시기까지 한다면!
삭개오는 그가 매달려 있던 절망의 나무에서, 교만의 나무에서 그리고 죄의 나무에서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기꺼이 남은 삶 전부를 예수님과 함께 걷기로 작정했지요.
_ 본문 102~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