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가기 싫다고? (So You Don't Want To Go To Church Anymore) - 제이크 콜슨 [출판사:살림]
교회 가기 싫다고? (So You Don't Want To Go To Church Anymore) - 제이크 콜슨
교회 가기 싫다고? (So You Don't Want To Go To Church Anymore) - 제이크 콜슨
“전 세계에 엄청난 논란과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화제작!”
“2,000년 전의 사도 요한이 어느 날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과 당신의 삶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그가 평온한 당신의 삶을 온통 휘저어 놓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을 거니시고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했던 예수님과 직접 만났던 듯한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가진 듯한 그는 과연 우리의 신앙생활, 현대 교회의 모습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해 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소설의 주인공 제이크 콜슨은 이러한 놀라운 인물을 만나고 나서 몹시도 흥분되지만 동시에 꽤나 당황스러운 딜레마에 빠졌다. 그럭저럭 성공한 교회의 목사로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마치 예수님을 실제로 만난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동안 자신이 신앙생활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들에 도전하는 사람을 만난다.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라고만 소개하는 그는 제이크가 결코 어중간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지만 영혼을 휘저어 놓는 것 같은 아주 강력한 방식으로 제이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요한.
요한의 도전에 제이크는 뭔가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제대로 살아갈 것인가? 그저 월급 받는 한 교회의 목사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등장한 요한은 엉켜 버린 실타래 같은 제이크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오두막』을 발굴한 저자의 4년에 걸친 연재, 그 이후 계속되는 뜨거운 논쟁!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해 세상에 그냥 묻힐 뻔했던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의 진가를 알아보고 출간했던 저자 웨인 제이콥슨은 이 소설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삶은 어떤 것인가?”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신앙생활인가?”
이 책은 제이콥슨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4년에 걸쳐 연재한 소설이다. 책으로 출간된 이후에 아마존 등 각종 웹사이트에서 “진정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을 일으키며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입소문을 통해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출간된 지 만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그 신선한 논란을 지속시키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불꽃을 계속 나누어주고 있다.
‘정말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아 오늘은 정말 교회에 가기 싫다!’
교인들의 마음속 깊은 회의와 갈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불편하고 위험한 책!
어느 날부터인가 기독교는 혼란에 빠진 이 사회에 답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오히려 교회가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 참담한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이 책은 그 원인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교회 가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지만 주일만 되면 습관처럼 교회로 향하는 신자들에게 우리를 진정으로 신자이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존재하며 이 세상에 답이 되기를 원한다면 조직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교회를 본질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역사상 존재했던 그 위대한 무리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예수님과의 실제적인 동행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교회의 일원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인가?”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다.요한이 제이크에게 던진 이 도전은 교회 가기 싫은 사람도, 교회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깊이 고민해 봐야 할 질문이다. 『교회 가기 싫다고?』는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도전한다. 독자들에게 부드럽지만은 않을 이 소설은, 그러나 우리의 가장 가려웠던 곳을 긁어주는 상쾌한 시원함과, 진정한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영적 건강을 해치는 군더더기 살을 과감히 도려내 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할 것이다.
■ 본문 속으로
그가 계속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그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친밀감에 매료되었다. 그는 마치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이 사람은 내가 상상해 왔던 사도 요한 모습 그대로야.”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그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내 목덜미 쪽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섰고 온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그는 잠깐 동안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내게 윙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이긴 했지만 그의 입가에 스치는 듯 분명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적어도 그랬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이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잖아……. 저 사람이 설사 사도 요한이라 해도 남의 마음까지 읽어 내는 사람은 아닐 거야.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저 사람이 정말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라면 지금 2천 살은 됐을 텐데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잖아.’ 그가 시선을 돌리는 동안 나는 혹시 그가 다른 사람을 바라본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미소나 윙크를 알아차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잘못 날아온 축구공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어리벙벙했다. 머릿속에 온갖 질문들이 스치면서 내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나는 그 낯선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 1장 ‘이상했고 아직도 이상하기만 한 사람’ 중에서
“어느 교회에 다니세요?” 이 질문에 구체적인 이름을 대면서 대답할 수 있었을 때에도 나는 이 질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화적인 면에서 이 질문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긴 하지만, 이 질문은 교회를 우리가 갈 수 있는 특정한 장소나 행사나 조직화된 단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그와는 상당히 다르게 보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님은, 교회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과 그분께 속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이야기하셨다.
내게 어느 교회에 다니는지를 묻는 것은 어느 제이콥슨에게 가는지를 묻는 것과 같다.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제이콥슨이고 내가 가는 곳이 제이콥슨이다. ‘교회’는 그와 같은 것이다. 한 지역이나 하나의 시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묘사해 주는 말이다. 그 사실을 놓치게 되면 교회에 대해 왜곡된 지식을 갖게 되고 교회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상당 부분 잃게 될 것이다,
- 부록 ‘내가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는 이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