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Cross) - 김응국 [출판사:규장]
십자가 (Cross) - 김응국
저희 죄악을 공개자복합니다!!
규장 · 갓피플에 임한 강력한 성령체험 사건 「하늘의 언어」, 그 이후
성령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신 곳은 ‘십자가복음’이었다.
추악한 죄를 회개시키고 새생명으로 이끈 말씀과 그 여정을 공개합니다!
교만하고 무지한 저희를 살리신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십자가’는 내 자아가 죽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십자가를 피해
한평생 죄에 매여 종 노릇 하던 저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참평안을 주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규장과 갓피플 직원들에게 전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하늘의 언어로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진 공동체에
성령이 회개의 영으로 역사하셨다.
2007년 10월 23일, 성령은 설교자인 나부터 구체적인 죄를 공개 자복하게 하셨다.
그러자 성령의 감동 가운데 십자가에 찔리는 마음을 가진 직원들에게
눈물의 자복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CEO로부터 신입 직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통곡 가운데 공개 자복했다.
아침 7시에 시작된 집회가 정오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가 중단된 채 통회 자복이 계속되었다….
인생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답은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_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내 실속만 챙긴 예수 장사꾼입니다.
나는 예수 피 값으로 산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한 사탄의 노예였습니다.
나는 위선과 외식으로 바리새인의 누룩을 퍼뜨린 거짓 선생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 칭송받은 영광 소매치기입니다.
내 정욕과 욕심대로 하나님을 길들이려고 한 내가 자아의 왕이었습니다.
주 예수여, 나를 용서해주옵소서.
십자가의 말씀을 통하여 이제 깨달았습니다.
나의 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였음을 깨닫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내가 예수 죽인 살인자임을 눈물로 고백합니다.
나의 죄 때문에 주께서 살이 찢기시고 상처 입으셨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주께서 물과 피를 전부 쏟으셨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자책하고 사죄합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함 받기 원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내 죄가 사함 받고 청산되었음을 믿습니다.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님(Lord)이시고 나의 구주(Savior)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심을 고백합니다.
주 예수여, 나의 왕으로서 나를 다스려주옵소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겠습니다.
이 모든 죄악을 도말해주신 예수 십자가만 바라보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기도가 당신과 나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_ 본문의 ‘회개의 기도’ 중에서
[ 프롤로그 ]
당신은 십자가의 문을 통해
기독교에 들어왔는가?
연탄아궁이와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산소탱크를 구비한 종합병원에 빨리 달려가 치료를 받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각 가정마다 어느 병원이 산소탱크를 구비하고 있는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산소탱크가 없는 병원에 달려가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죄악의 가스에 취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영적 산소탱크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어떠한 죄인이든 영적 산소탱크인 십자가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죽음의 죄악에서 벗어나 참 생명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그 아들(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4)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유대인들처럼 십자가를 꺼리는 자들이 되었다(고전 1:23).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크리스천의 액세서리로 변하고 십자가의 의미와 십자가의 삶은 용도 폐기되었다. ‘십자가의 복음’이 있던 자리에 ‘부(富)와 번영의 복음’이 자리하게 되었다. ‘자기부인’(自己否認)의 십자가를 허물고 ‘자기긍정’, ‘자아숭배’의 우상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십자가를 치워버린 자리에 엔터테인먼트 공연(公演)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십자가로 인해 통회 자복이 터져 나와야 할 자리가 세속의 여흥으로 들썩이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산소탱크 없는 병원이 연탄가스 중독 환자를 살릴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죄인을 살릴 수 없다. 오늘의 기독교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십자가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교인은 많지만 성도가 희소한 까닭이 무엇인가? 기독교가 천만 교세(敎勢)를 자랑한다 하지만 진정한 소금과 빛을 볼 수 없게 된 까닭이 무엇인가? 십자가가 부러졌기 때문이 아닐까?
운전면허 학원에서 운전기술을 가르쳐주지 않고 노래를 가르친다면, 누가 그 학원에 다닐까? 대입영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고 웅변을 가르친다면, 누가 그 학원에 다닐까? 그런데 기독교가 십자가로 인한 속죄(贖罪)를 가르치지 않고 자기개발(self-help)을 가르치고, 심리학을 가르치고, 처세술을 가르친다면, 기독교가 그 본분에서 이탈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교인들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불신자로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 안의 불신자의 문제이다. 미전도 종족을 위해서라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선교를 가면서, 지금 한국 교회 안의 불신자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이 가장 복음을 전하기 힘든 강적(强敵)임을 왜 알지 못하는가? 예수 믿지 않고 자신을 믿고, 세상을 믿는 크리스천이 오늘 한국 기독교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 예수 믿지 않는 크리스천들을 예수 믿도록 하기 위해 습관의 교인, 제도의 교인, 명목상의 교인에게 ‘미련한 십자가의 도’(고전 1:18)를 들이댈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모태신앙의 이름으로 십자가 사이를 미꾸라지 빠져나가듯이 빠져나간 자, 교회 직분자라는 직함 뒤에 숨어서 십자가와 직면하기를 회피한 자,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습관과 관성으로 교회생활 하면서 십자가와 맞닥뜨리기를 회피한 자, 향우회나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듯이 교회에 등록하고 십자가와 상관없이 지내는 자에게 피할 길을 주지 않고 십자가를 드밀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당신의 죄의 옛 사람을 격침시키고 의(義)의 새 사람을 지을 뿐만 아니라(롬 6:6-14) 내 속에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서(갈 2:20) 그리스도의 성품, 그리스도의 능력을 충만히 드러내는 삶으로 인도하기를 바란다.
하늘의 언어 그 이후
이 책은 작년 규장과 갓피플의 전 직원이 ‘하늘의 언어’(방언)를 받고 난 뒤 10월부터 직원 부흥회에서 전한 현장 메시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작년 4월 전 직원이 하늘의 언어를 체험하고 나서(이 사건은 김우현 감독의 《하늘의 언어》에 상세히 나와 있다) 미지근한 신앙에서 뜨거운 신앙으로 회복되었다. 영(靈)으로 더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예배가 회복되었다. 통상 8시 30분에 시작해서 9시에 마치던 아침 예배의 자리에 7시부터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통성기도 소리는 마치 천지를 진동하는 폭포수 소리 같았고 2,30분씩 지속되기도 했다. 입술만의 찬양이 아니라 심령 중심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영의 찬양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이런 열렬함이 6개월이나 지속되면서 예배와 찬양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여진구 대표와 나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변화되기는 했지만, 왜 하늘의 언어를 체험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많은 직원들의 삶에 큰 진전이 없는 걸까?’
자기 연민에 빠진 직원은 그 상태에서 온전히 헤어나지 못했고, 과거의 상처에 묶인 직원도 그 상처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했고, 슬럼프에 빠진 직원 역시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럴까?’ 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다.
물론 은사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늘의 언어를 체험한 이후, 이전과는 명확히 달라진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인도와 깨우침에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얼마나 귀한 일인가!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말씀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自意)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요 16:13)
성령은 규장과 갓피플의 전 직원이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셨다.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 4:6)
이 말씀에 대한 자각으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아는 길로 나아갔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부자인 척했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목격하게 하셨다.
네가 말하기를 나를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7)
규장과 갓피플 직원들이 책과 인터넷을 통해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으로 모였다고 하나 바쁘고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업무에 밀려 사명으로 뜨거웠던 가슴은 식고, 은혜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젖어 일하는 경우도 많다. 성령은 바로 우리의 그런 맹점을 말씀을 통해 깨우쳐주셨다. 그리하여 직업의식으로 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사람’ 된 정체성임을 깨닫게 하셨다. 경영진 또한 업무의 성과가 아닌 거룩한 삶을 강조하였다. 결국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가 붙들게 되었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야 한다는 각성이 일었다.
많은 직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知的)으로 읽는 데서 벗어나, 남을 위한 말씀이 아닌 바로 ‘나’를 변화시키는 생명의 말씀으로 맹렬히 탐독(耽讀)해 나갔다. 옥탑방에는 ‘십자가’ 기도실을 만들어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개방했고, 자원하는 직원 누구나 1시간씩 릴레이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기 시작했다.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처방전
그러는 가운데 성령께서 조명해주시는 말씀을 통해 명확한 깨우침도 받게 되었다. 고린도교회는 비록 은사 체험은 많았지만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나뉜 분쟁의 문제(고전 1장), 음행의 문제(고전 5장), 믿지 않는 자에게 송사하는 문제(고전 6장), 우상 제물에 관한 문제(고전 8장), 바울의 사도권에 도전하는 문제(고전 9장), 은사 체험에 관한 문제(고전 12-14장) 등 이런 여러 문제에 대한 바울의 처방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바울은 많은 은사를 체험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고린도전서 초반부터 십자가에 집중할 것을 요청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2-24)
또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은사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진단한(고전 12-14장) 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결론적으로 내린 처방 역시 십자가와 부활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1-4)
그렇다! 은사는 정말 귀한 것이다. 우리는 은사를 통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성령의 인도에 예민해지는 유익을 얻으며, 다른 지체를 좀 더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은사는 양날의 칼과 같다. 은사를 절제하여 덕스럽게 사용하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공동체에 해(害)를 입히게 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전체를 통해 아무리 은사 체험이 많더라도 교인들이 문제로 허덕일 수 있다는 것과, 교인들의 여러 문제와 은사 체험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바로 기독교의 본질인 십자가와 부활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규장과 갓피플 직원들이 하늘의 언어를 체험했지만 문제 가운데 고투했던 까닭 역시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의 정수(精髓)를 제대로 직면하지 못했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바로 규장과 갓피플 직원들의 문제였다. 그래서 2007년 10월부터 매주 금요일 직원 부흥회를 통해, 또 은혜가 퍼부어질 때에는 요일을 가리지 않고 매일 아침 10여 차례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십자가를 전했다. 십자가 설교 후에는 부활에 관한 설교가 이어졌다(이 책에는 ‘십자가’에 관한 메시지만 담았다. 이후 ‘부활’ 메시지를 모아 후편을 출간할 예정이다).
혹자는 2천 년 전 예수님의 십자가를 고증하고 예루살렘의 여인들처럼 십자가에 동정을 표하는 것이 십자가를 전하는 것인 줄 안다. 어떤 사람은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역사적으로 변증하는 것이 부활을 전하는 것인 줄 안다. 물론 둘 다 부분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역사적 사건임을 분명히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도(道)는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명확히 전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죄의 문제, 자아의 문제, 구원의 문제, 거룩한 삶의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전해야 복음이 된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우리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이라는 복음을 맡겼는데, 그것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직무유기에 대해 하나님께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독사에 물린 사람에게는 빨리 해독제를 투여해야 한다. 옛 뱀 사탄에게 물려 죄악의 독이 온몸으로 퍼지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해독제는 십자가와 부활밖에 없다. 그런데 왜 그 해독제를 사용하기 꺼리는가? 바울은 영적 의사로서 이 해독제를 얼마나 자랑했는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이 확신으로 예수의 십자가가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규장과 갓피플 직원들에게 전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하늘의 언어로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진 공동체에 성령이 회개의 영으로 역사하셨다.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공개적인 눈물의 통회 자복
2007년 10월 23일, 성령은 설교자인 나부터 구체적인 죄를 공개 자복하게 하셨다. 그러자 성령의 감동 가운데 십자가에 찔리는 마음을 가진 직원들에게 눈물의 자복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CEO로부터 신입 직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통곡 가운데 공개 자복했다. 아침 7시에 시작된 집회가 정오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가 중단된 채 통회 자복이 계속되었다. 그것은 마치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있었던 자복의 부흥회 같았다.
내 평생 그 감격스러운 은혜의 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할렐루야! 종의 눈이 주님의 부흥을 목격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은혜에 감격하여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이제부터 소개하려는 것은 십자가 메시지를 전하고 난 뒤 일어난 이 공개 자복의 내용 중 일부이다. 십자가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됨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 것이다(고전 1:18,24). 먼저 CEO인 여진구 대표부터 자신의 죄를 마음을 찢으며 눈물로 자백하기 시작했다.
<하략>